연극 한 편도 훌륭한 수업 … 학교폭력 예방엔 딱이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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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다같이 괴롭혔는데 왜 저한테만 그러세요.”

 담임교사가 같은 반 친구에게 ‘빵셔틀’을 시키고 바지를 벗기며 괴롭히던 한 남학생을 훈계한다. 그러자 이 학생은 반성은커녕 눈을 부라리며 담임에게 대든다. 피해 학생은 구석에서 불안한 얼굴로 이 장면을 지켜보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겁을 먹어서다.

 12일 서울 성북구 성북예술창작센터에서 진행된 연극 연습의 한 장면이다. 극단 ‘마실’이 학교폭력을 주제로 다음 달 무대에 올릴 연극이다.

 같은 시간, 갈색 눈의 한 외국인 여성이 객실 바닥에 앉아 연극 연습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이틀 전 한국교육연극학회의 초청으로 방한한 패트리스 볼드윈(59·영국·사진) 세계교육연극협회장이다. 1992년 설립돼 한국 등 90개국이 가입한 세계교육연극협회는 드라마와 연극을 통한 교육을 추구한다. 한국교육연극학회 김숙희 회장은 “최근 학교폭력이 사회적 문제로 떠올라 연극을 통한 해법을 모색하고자 볼드윈 회장을 초청했다”고 말했다.

 한국어를 모르는 볼드윈 회장은 배우들의 동작만 보고도 내용을 알겠다는 듯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올해 24살인 내 아들도 학교에 다닐 때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한 경험이 있어요.” 볼드윈 회장은 당시 괴로운 기억이 떠오르는 듯 얼굴을 찡그렸다. 그는 학교폭력을 줄이기 위해서는 정규 교육과정에 연극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조언했다. 영국에선 연극이 수학·영어 같은 정규 과목이다.

 “연극은 어떤 과목이든 가르치고 배울 수 있는 학습 도구죠. 함께 연극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의 인성과 창의성이 개발되고 서로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존중하게 됩니다.”

 대학에서 드라마를 전공한 볼드윈 회장은 초등학교 교사이던 80년부터 예술교육 컨설턴트 활동을 시작했다. 영국 공영방송인 BBC의 교육연극 프로그램 작가로 일했다. 2007년부터는 ‘배움과 창의성을 위한 연극(Drama for Learning and Creativity)’ 프로그램을 개발해 영국 노퍽주 300여 개 학교에 보급했다. 교사들이 학생과 함께 연극을 만들어 공연하고 연극이 학교폭력 해결 등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연구하는 프로그램이다.

김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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