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할 타자의 멸종 … 선수들 기량 좋아졌기 때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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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 교수가 백인천 이후 국내 프로야구에서 4할 타자가 사라진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김진경 기자]

“한국 프로야구에는 왜 4할 타자가 더 이상 나오지 않을까.”

 정재승(40)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는 지난해 봄 트위터에 이런 질문을 올렸다. 1982년 MBC 청룡의 감독 겸 선수 백인천이 기록한 0.412가 프로야구의 유일한 4할 타율이다. 단 한 번, 그것도 프로야구 원년에 나온 기록이다. 정 교수는 학창 시절 재미있게 읽었던 진화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의 가설-닫힌 계(界)에서는 진화가 일정 수준에 이르면 돌연변이가 나올 확률이 떨어진다-을 검증해 볼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혼자만의 작업으로는 삼지 않았다. 정 교수는 지난해 12월 18일 ‘백인천 프로젝트’라는 이름 아래 공동 연구자를 모집했다. 직장인, 대학원생, IT 전문가, 현직 판사, 야구 기록 매니어 등 다양한 직종의 58명이 모였다. 이들은 6개 팀으로 나뉘어 100여 일 동안 총 10차례 회의를 하는 등 공동작업을 했다. 그리고 ‘백인천의 타율 0.412’를 기념해 4월 12일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로 했다. 연구 결과는 논문으로 만들어져 학술지에도 실릴 예정이다.

 메이저리그에서도 4할 타율은 1941년 테드 윌리엄스(0.406) 이후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굴드는 1996년 발표한 『풀하우스』에서 ‘4할 타자의 멸종’에 대해 “메이저리그라는 생태계가 안정될수록 최고 타율과 최저 타율 선수의 차이가 줄어들기 때문”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타자들의 기량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오히려 향상됐기 때문에 4할이라는 특출한 기록이 사라졌다는 의미다.

 정 교수는 10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화이트보드에 낙타 혹 모양의 곡선을 네 개 그렸다. 각각의 곡선은 시기별(1980~2010년대) 국내 프로야구 타자들의 타율 분포를 나타내며, 혹의 가장 높은 부분은 평균 타율이다. 곡선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오른쪽과 왼쪽 끝이 가운데 방향으로 모였다. 평균 근처의 타율을 기록하는 선수가 많아진 반면, 아주 높거나 아주 낮은 타율은 줄어들었다.

 정 교수는 “분석 결과 한국 프로야구라는 생태계도 굴드의 이론처럼 안정화되고 있으며, 이 때문에 4할 타자라는 ‘돌연변이’는 다시 나오기 어렵다는 결론이 내려졌다”고 설명했다.

 16년 전에 나온 외국 학자의 이론 검증에 굳이 58명의 인원과 100일의 시간이 필요했을까. 베스트셀러 『과학 콘서트』의 저자이기도 한 정 교수는 “웹2.0 시대를 대표하는 위키피디아가 광범위한 대중이 참여해 기존 지식을 모은다면, 이번 시도는 대중이 직접 새로운 지식을 창조하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과학자들의 전유물이었던 영역”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4할 타자의 멸종’과 같은 ‘보통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질문’에 대해서는 대중이 모여 과학적인 결과물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최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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