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네마 추천 금주의 개봉영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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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밍량이 그린 세기말 역시 다른 역사가들의 예언과 그리 다르지 않다. 끝도 없이 내리는 비와 바이러스의 창궐 그리고 커뮤니케이션의 단절...차이밍량식 세기말적 절망과 기묘한 판타지가 공존하는 영화 '구멍'이 금주 개봉된다.

'애정만세','하류' 등의 영화로 호평받았던 차이밍량 감독은 '구멍'으로 98년 칸 영화제 국제비평가협회상을 수상했다.

'구멍'은 물이 새는 화장실을 수리하기 위해 '구멍'을 만들고, 그곳을 통해 소통하게 되는 익명의 아랫층 여자와 윗층 남자 이야기다. 이들은 일상의 무료함에 지쳐있다. 남자는 구멍을 통해 60년대 풍의 옷을 입고 그 시대 유행했던 '그레이스 창'의 노래를 불러제끼는 여자를 보고 갑갑한 현실을 잊고, 결국 바이러스에 감염돼 죽어가는 여자에게 손을 내민다. 결국 영화는 희망을 보여주는 것으로 결말을 맺는다.

차이밍량은 영화의 마지막 크레딧에서 "사는 것 자체가 끔찍했던 시절, 우리의 삶을 위로해 준 그레이스 창에게 감사한다"며 헌사를 바쳤다. 미래의 절망적 현실을 과거의 향수로 극복하고자 하는 감독의 세계관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추운 날씨에 훈훈한 웃음과 아기자기한 볼거리를 원하는 관객이라면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과 '브링 잇 온'을 권한다.

TV와 드라마 작가 출신의 미타니 코키 감독의 데뷔작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는 라디오 방송국의 생방송 드라마 전후에 벌어지는 온갖 해프닝을 일본 코미디 특유의 감각으로 담아낸 작품. 스튜디오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발생하는 코믹한 상황을 재치있는 대사들과 배우들의 능청스런 연기의 힘을 빌어 한편의 그럴 듯한 스크루볼 코미디로 만들어냈다.

발랄한 치어리더들의 치어리딩과 건강한 젊음으로 "치어 업(Cheer up!)" 할 수 있는 '브링 잇 온'은 젊은이들의 정의와 의리, 스포츠 정신 등 건강한 메시지를 담은 젊은 영화. 탄탄한 시나리오가 만들어낸 균형이 성적매력만을 강조한 10대용 단순 로맨스로의 추락을 막았다. 개봉 첫 2주간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애니메이션 팬들에게 반가운 소식 하나가 있다. '공각기동대'의 오시이 마모루가 제작,기획,원작,각본을 맡은 '인랑'이 이번주 소개되는 것. '무사 쥬베이'에 이어 두번째로 개봉되는 제패니메이션 '인랑'은 감독은 오키우라 히로유키지만 오시이 마모루의 색깔이 짙다. 일본보다 유럽에서 먼저 개봉돼 극찬을 받은 '인랑'은 일본 근현대사를 배경으로 그린 "오시이 마모루식 동화"다. 역시 분위기는 암울하기 그지없다. 기존 애니메이션의 한계를 뛰어넘는 '리얼리즘'은 어느 실사영화에 뒤지지 않을만큼 돋보이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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