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도덕적 해이 심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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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에 유능한 전문경영인을 보내려고 해도 낙하산이라고 안된다, 임금인상을 좀 자제하라고 해도 안된다는데, 그러면 도대체 공기업의 주인은 정부나 국민이 아니고 누구란 말인가. "

기획예산처 관계자는 최근 정부의 공기업 임금인상 가이드라인(6%)에 대해 노조가 효력정지처분을 법원에 내고, 20개 공기업의 1급간부 중 20%를 개방형으로 바꾸려 한 계획이 노조의 반대로 보류되자 이같이 말했다.

공기업의 인력감축, 주요 공기업의 민영화.매각 등이 핵심인 공공부문 개혁이 공기업 임직원.노조 등의 반발로 도처에서 마찰을 빚고 있다.

공기업 개혁은 그동안 3만9천명의 인원감축 실적이 있지만 금융.기업부문에 비해 가장 부진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한국통신은 1997년부터 직원의 20%인 1만2천명을 감원했지만 인건비는 오히려 22%나 늘어난 점이 국정감사에서 지적되기도 했다.

실제로 담배인삼공사의 경우 인력 5백명을 감축하면서 퇴직금 외에 명퇴금을 지급키로 한 것은 물론이고 '1년 뒤 재취업 보장' 까지 해준 것으로 밝혀져 문제가 되고 있다.

파업 비상이 걸린 한국전력의 경우 겉으로 드러난 수치와 내부에 감춰진 비효율이 극명하게 대비된다.

한전 노조는 그동안 민영화의 반대논리로 "부채규모(31조7천억원)가 지난해 말(33조8천억원)보다 다소 줄었고, 부채비율이 1백%에 불과하며, 이자를 갚고도 흑자를 1조원 가량 냈다" 는 점을 집중적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부채규모가 줄어든 것은 그동안 부채로 잡혀 있던 퇴직유보금이 지난해 집행됐기 때문이며, 부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차입금은 오히려 계속 늘어났다.

한전이 이익을 내고 있는 것은 원가 총액 보상원칙에 따라 모든 비용을 전기료 등으로 충당하므로 얼마든지 흑자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대규모로 실시했다는 인력감축도 자연퇴직자 등을 중심으로 엄청난 명예퇴직금을 지급하며 이뤄졌다. 30년 근무한 지방의 한 부장은 모두 4억5천만원의 퇴직금을 받았다.

98년 18조원이었던 자본이 한해사이에 30조3천억원으로 크게 늘어나 부채비율이 낮아진 것도 실제 자본이 늘어난 것이 아니라 장부상 자산재평가를 했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이같은 외형이 아니라 상호감시.책임경영체제가 전혀 가동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전은 한명의 사장이 국가예산의 3분의1에 달하는 방대한 예산과 3만4천명의 직원관리를 책임지고 있다. 국회 심의를 거쳐야 하는 국가예산만큼의 감시가 불가능한 것은 물론이다.

효율성 문제도 심각하다. 발전설비 등에 필요한 재고관리가 좋은 예. 구입 후 지금까지 단 한번도 쓰이지 않은 재고물량이 38만종 2천5백97억원어치에 이른다.

말썽많은 자재구매도 수의계약으로 대부분 이뤄진다. 일반경쟁시에도 낙찰률이 99%에 이를 정도다. 한전의 발전부문을 6개 자회사로 우선 분할한 뒤 상호 원가경쟁을 시켜 경영효율을 꾀하겠다는 이번 분할.민영화 관계법안은 바로 이런 배경에서 마련된 것이다.

한국개발연구원 임원혁 연구위원은 "노조측이 앞으로 전력요금이 오른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지만 이는 현재 너무 싸게 책정된 전력요금체계를 현실화할 때의 문제지 민영화와는 무관한 것" 이라며 "설사 민영화 이후 담합이나 지나친 가격인상 문제가 생겨도 이는 공정거래위에서 충분히 감시가 가능하다" 고 말했다.

산업연구원 김도훈 정책실장은 "한전과 같은 상황은 대부분의 공기업에서 공통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며 "결국 시장경제와 책임경영에 대한 확고한 인식만이 공기업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 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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