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 이형택 "세상에 별 일도…"

중앙일보

입력

테니스 게임 도중 라켓을 세개나 부러뜨렸다. 그리고 라켓이 없어 기권했다. 더구나 벌금까지 물었다.

세계테니스대회 사상 초유의 해프닝으로 고란 이바니세비치(크로아티아)는 울었고, 이형택(삼성증권)은 웃었다.

"내가 은퇴하고 나면 사람들은 나에 대해 이렇게 기억할 것이다.윔블던에서 한번도 우승하지 못한 놈, 그리고 라켓이 없어서 기권한 놈. "

이바니세비치는 "나는 원래 그런 놈" 이라는 말로 자신의 어이없는 행동을 설명했다. 이형택은 24일(한국시간) 영국 브라이턴에서 벌어진 삼성오픈테니스선수권대회(총상금 37만5천달러) 단식 2회전에서 강서버 이바니세비치를 만났다.

이바니세비치의 현재 랭킹은 1백34위로 99위인 이형택보다 아래지만 한때 톱10에 들었고, 윔블던대회 결승에만 세차례나 오른 강호. 어깨 부상으로 지난 6월부터 쉬는 바람에 랭킹이 떨어졌다.

5개월 만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대회 1회전에서 4번 시드인 지안루카 포지(이탈리아)를 꺾어 '화려한 재기' 에 성공했다.

이형택으로서는 벅찬 상대였다. 그러나 US오픈 16강 진출 이후 자신감을 얻은 이형택은 완벽한 스트로크를 구사하며 대등한 경기를 펼쳐나갔다.

서로 자신의 서비스 게임을 착실하게 따낸 1세트 5 - 5 상황. 이바니세비치의 서비스 게임을 이형택이 따내며 6 - 5로 앞서 나갔다.

바로 이때부터 이바니세비치의 '라켓 부러뜨리기' 가 시작됐다. 자기 분을 못이긴 이바니세비치는 공을 관중석으로 쳐내는 '무례' 를 범한 뒤 라켓을 내동댕이치며 부러뜨렸다.

1세트를 5 - 7로 진 이바니세비치는 냉정을 되찾아 타이브레이크 끝에 2세트를 7 - 6으로 따냈다. 그러나 3세트에서 병이 다시 도졌다.

게임스코어 1 - 1에서 이형택의 서비스 게임을 따낼 수 있는 찬스를 놓치면서 1 - 2로 뒤지자 다시 두번째 라켓을 부러뜨렸고, 곧이어 자신의 서비스 게임에서 더블 폴트를 범하자 드디어 세번째이자 마지막 라켓마저 부러뜨렸다. 그리고는 주심에게 "라켓이 없어 경기를 못하겠다" 고 말하고 코트를 나가버렸다.

대회조직위원회는 "라켓이 없어 기권한 경우는 투어 사상 처음" 이라며 " '고란 룰' 이라도 정해야 할 판" 이라고 어이없어 했다.

이바니세비치에게는 1천달러(약 1백20만원)의 벌금이 부과됐다. 이형택은 이바니세비치에게 기권승을 거두고 8강에 올랐다.

8강 상대는 예선을 거쳐 올라온 렌조 풀란(이탈리아)으로 랭킹이 3백위에 불과, 한국 남자선수로는 처음으로 투어대회 4강에 진출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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