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한명숙 서로 그림자 밟기 … 동선 뒤쫓아 견제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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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새누리당 선거대책위원장이 4일 오후 경기도 부천역 광장에서 열린 합동유세에 참석해 유권자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사진 왼쪽). [김형수 기자],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가 4일 충남 연기군 중앙시장에서 상인들에게 두 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뉴시스]

1995년 6월 서울시장 선거에서 여당인 민자당 정원식 후보가 민주당 조순 후보에게 패했을 때다. 당시 민자당 총재이자 ‘정치9단’으로 불리던 김영삼 대통령이 정 후보에게 “동선(動線)을 흘리고 다니니까 진 것 아니냐”고 핀잔을 줬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조 후보는 당시 정 후보의 ‘동선’을 파악한 뒤 빠짐없이 뒤쫓아가 정 후보 쪽으로 표가 넘어가는 걸 막았다고 한다. 조 후보가 이런 전략을 세워서 실행에 옮긴 것은 또 한 명의 ‘정치9단’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련한 훈수 덕이라는 게 정설이다.

 선거에서 유세 동선은 매우 중요하다. 상대의 선거전략이 읽히기 때문이다. 이번 총선에서도 새누리당 박근혜 선거대책위원장과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의 유세 동선은 공식 유세 첫날부터 상대편 ‘그림자 밟기’로 시작됐다.

 지난달 29일 오전 7시25분 한 대표가 서울 영등포구 신길역 부근에서 출근 인사를 시작한 지 35분 뒤 인근 대림역에 박 위원장이 나타났다. 신길역과 대림역은 새누리당 권영세 사무총장과 민주통합당 신경민 대변인이 출전한 영등포을 지역이다. 두 사람은 이날 오전 11시와 11시30분 각각 서울 광화문 청계광장(박 위원장)과 광화문광장(한 대표)에서 각각 새누리당 홍사덕·정진석 후보, 민주당 정세균·정호준 후보와 함께 합동유세를 했다. 서울 종로·중구에 이어 동대문까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부딪혔다.

 4일도 마찬가지였다. 한 대표는 세종시 조치원시장에서 이해찬 후보 지원 유세에 나서 “박근혜 위원장이 세종시를 새누리당이 지켜냈다고 말했는데 다 차려 놓은 밥상에 숟가락 얹고 새누리당이 지켜냈다고 하는 것은 숟가락 정치”라고 공격했다. 바람의 방향이 상대방 측으로 바뀌기 전에 ‘그림자 밟기’에 나선 것이다.

 박 위원장은 전날 충남 천안·공주·부여를 돌며 “야당 때 약속했던 세종시를 지켜내기 위해서 저와 새누리당의 많은 의원들이 정치 생명까지 걸었다”며 ‘세종시 원안 사수’ 노력을 부각했었다. 또 다른 격전지인 부산·경남(PK) 공략법도 유사했다. 박 위원장이 지난달 13일, 27일 부산을 방문해 부산 사상의 손수조 후보를 격려하자 한 대표는 이튿 날인 14, 28일 부산을 찾았다. 하루 차이로 시간차 공략을 벌인 셈이다. 그러자 박 위원장은 이달 1일 세 번째로 부산 사상을 찾아가는 ‘뚝심’을 발휘했다.

 일주일간 유세 동선을 보면 박 위원장은 수도권과 지방을 하루씩 번갈아 도는 ‘반분(半分)전략’을 쓴 반면 한 대표는 일주일 중 4일을 수도권에 집중했다. 그러자 박 위원장도 4일엔 경기 안양 등 수도권 12곳을 집중해서 돌았다. 민간인 사찰 공방 국면에서 부동층이 야당 쪽으로 쏠리는 걸 차단하려는 포석인 듯하다. 박 위원장은 이날 “전 정권이 (민간인)사찰을 하지 않았다면 무엇이 두려워 특검을 거부하느냐”며 “야당은 진실규명이 아니라 선거에 불법사찰을 이용하는 데만 관심이 있다”고 했다.

 현재 박 위원장에게 각 지역구 여당 후보들의 유세 요청이 쇄도하다보니 하루 유세 동선은 박 위원장이 평균 10.5회로 한 대표(8.5회)보다 많았다. 5일에는 울산에서 출발해 포항·대구·칠곡·원주를 거쳐 경기 고양까지 500㎞ 국토종단 유세를 벌인다. 이혜훈 새누리당 선거상황실장은 “앞으로 일주일은 수도권과 충청,부산·경남 등의 격전지 유세에 집중하다가 마지막 10일엔 제주부터 전국을 순회하는 24시간 마라톤 유세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민주당 한명숙 대표는 야권연대 효과를 키우기 위해 이정희·유시민 통합진보당 대표와 공동 유세를 하고, 손학규 상임고문과 수도권 및 대전·충남·강원 등 중부권에서 유세를 나눠서 진행하고 있다. 여기에 야권의 ‘해결사’로 떠오른 부산 사상의 문재인 후보가 주말께 수도권 유세에 합류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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