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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총리실 조사심의관실, 집권당 김영환 의원 사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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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총리실 민간인 불법사찰의 몸통을 자처했던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이 지난달 31일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출두하고 있다. [연합뉴스]
본지가 입수한 총리실 조사심의관실 문건.

민주통합당 김영환 의원이 2003년 2월 국무총리실 조사심의관실의 사찰을 받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1일 중앙일보가 입수한 조사심의관실 문건에 담긴 내용이다. 이곳은 민간인 불법사찰로 문제가 된 공직윤리지원관실(현 공직복무관리관실)의 전신(前身)이다.

 2003년 2월 28일로 문건이 만들어진 날이 적혀 있는 ‘비위자료’라는 제목의 문건엔 새천년민주당(현 민주통합당) 김영환 의원이 세무조사를 무마해달라는 주유소 업자의 청탁을 받고 국세청 간부에게 선처를 부탁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이에 따르면 당시 국세청 간부는 담당 과장과 직원에게 지시해 업자에게 추징된 수억여원의 세액을 4300만원으로 감면시켜줬고, 이 업자는 나중에 김 의원에게 사례를 했다는 것이다. 조사심의관실은 “위 첩보는 업자가 친구들과 사석에서 자랑 삼아 발설한 내용”이라고 첩보 입수 경위까지 상세히 기재해놓았다.

이에 대해 김 의원은 1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말도 안 된다. 내용도 사실이 아니고, 문건에 나온다는 사람들도 알지 못한다”고 펄쩍 뛰었다. 그는 “사찰을 당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며 “그런 일이 사실이라면 나를 (노무현 정부가) 가만뒀겠느냐”고 덧붙였다. 김 의원은 김대중 정부 시절 과학기술부 장관(2001년 3월~2002년 1월)을 지냈으며, 2002년 대선 과정에선 반노무현 진영으로 지목됐다. 문건 내용이 사실이라면 노무현 정부에서 사법처리됐을 텐데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문건 내용의 사실 여부를 떠나 정부의 감찰 대상이 아닌 여당 의원과 관련한 첩보가 이명박 정부의 공직윤리지원관실뿐 아니라 그 전신인 조사심의관실 보고서에도 등장한 것이다.

 인천시 윤덕선 농구협회장(2003년), 전국전세버스운송사업조합연합회 김의엽 회장(2007년) 등 민간인의 이름도 조사심의관실 문건에 나왔다.

 윤 전 회장은 회사가 납품과 관련된 비리를 저질렀다는 내용이 실렸고, 김 회장의 경우 측근을 부당하게 복직시키고 월급을 줘 ‘업무상 배임’ 혐의가 있다는 보고가 담겼다. 2004년 보고서엔 허성식 민주당 전 인권위원회 부위원장으로 돼 있는 이름도 나온다. 그는 대우건설 남상국 전 사장의 연임을 지원하고, 이후 대우건설에서 토목공사를 발주받게 해주겠다고 한 정황이 담겼다. 허 전 위원장은 현재 민주통합당에 몸담고 있지 않아 연락이 닿지 않았다. 문건에 나온 문장은 대부분 ‘~라고 함’으로 마무리됐다. 들은 것을 수집해 적은 형식이지만 내용을 볼 때 조사심의관실이 불법사찰을 했다는 의혹은 피해갈 수 없는 상황이다.

이들 네 사람은 모두 조사심의관실의 ‘감찰’ 대상이 될 수 없는 신분이다. 총리실 관계자는 “공직자를 감찰할 때 해당 공직자의 비위 사실과 관련된 민간인의 이름이 나오더라도 자발적 협조를 구해 자료를 받거나 조사를 해야 한다”며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모두 불법”이라고 말했다. 그는 “본인 의사에 반해 감찰을 할 수는 없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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