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무상복지가 부른 지방 재정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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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재정 여건을 고려하지 않은 무분별한 무상복지의 확대가 곳곳에서 파열음을 내고 있다. 전국 16개 광역지방자치단체장들의 모임인 전국 시·도지사협의회는 29일 0~2세 영·유아에 대한 무상보육 사업을 열악한 지방재정으로는 감당하기 어렵다며 “중앙정부가 무상보육 예산을 전액 지원해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정부와 정치권이 일방적으로 결정한 무상보육 제도에 지자체들이 정면으로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0~2세 영·유아에 대한 무상보육은 당초 정부가 소득 하위 70%를 대상으로 삼았으나 국회 심의 과정에서 전 계층으로 확대했다. 정부는 이를 위해 올해 3698억원의 예산을 책정했으나 정부와 같은 규모의 보육료 지원액을 부담해야 할 지자체들이 추가 재원이 없다며 손을 들어버린 것이다. 올해부터 어린이집에 다니는 영·유아에 대한 보육료 지원이 시작되자 집에서 아이를 키우던 가정도 너도나도 어린이집에 보내려는 바람에 지원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지자체들은 이대로 가면 올 6월이면 무상보육 재원이 고갈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내년에 무상보육이 만 3~4세로 확대되면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재정부담은 더욱 가중될 수밖에 없다. 특히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자체에는 추가되는 무상보육비 부담이 지방재정을 파탄 낼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불러온 것이다.

 물론 지자체들의 재정파탄 우려에는 다소의 과장과 엄살이 섞여 있을 수 있다. 지방재정의 낭비 요소를 줄이고 호화 청사 등 방만한 사업예산을 돌려 쓰면 어느 정도 무상보육료를 감당할 여지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낭비성 예산을 줄이는 데도 한계가 있을뿐더러 방만한 재정운용을 개선하는 것과는 별개로 무상복지비 부담이 열악한 지방의 재정사정을 악화시킨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결국 이번 지자체들의 반발은 무상복지의 확대가 다른 예산의 축소나 중앙정부의 지원이 없으면 불가능하다는 점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준다. 무상복지는 하늘에서 저절로 떨어지는 게 아니라 재원배분의 우선순위에 대한 선택의 문제일 뿐이다.

 일부 지자체에서 시행하고 있는 무상급식도 마찬가지다. 뻔한 예산에 무상급식을 새로 하려면 다른 지출을 줄일 수밖에 없다. 무상급식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부실한 학교시설을 고치지 못하거나 필요한 교육기자재를 확보하지 못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급식의 질을 떨어뜨리는 방법도 있다. 일선 학교 현장에서는 이미 이러한 부작용이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무상급식은 교육감의 자비로운 선행이 아니라 국민이 부담하는 교육비 지출 항목의 자의적인 재배정일 뿐이다.

 이제 무상급식이나 무상보육이 결코 ‘공짜’가 아니라는 사실이 분명히 드러났다. 앞으로 무상복지 확대로 인한 부작용과 폐해는 갈수록 더 늘어날 것이다. 국민은 정치권의 ‘무상복지’ 주장에 더 이상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누군가 무상복지를 늘리자고 하면 어디서 그 돈이 나오는지를 먼저 챙겨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