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차기 세계은행 총재 후보로 김용 미국 다트머스대 총장을 지명한 데 대해 세계 각국에서 지지 표명이 잇따르고 있다. 중국 신화통신은 24일(현지시간) 오바마 대통령의 선택을 “고무적”이라며 “오바마의 결정은 세계은행 내에서 역할이 커져야 한다는 개발도상국의 요구에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했다는 점을 보여 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아프리카 르완다 폴 카가메 대통령도 “김 총장은 아프리카의 진정한 친구”라며 “가난 퇴치에 앞장설 적임자”라고 환영했다. 미국 워싱턴 포스트(WP)는 이 소식을 1면 주요 기사로 다룬 데 이어 사설에서도 “한국 태생으로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으로 여겨 온 김 총장의 후보 지명은 그동안 백인 남성이 이끌어 온 세계은행에 새로운 지평을 여는 의미가 있다”고 논평했다.
다음 달 25개국 이사회에서 결정되는 총재 선출과 관련해선 호세 안토니오 오캄포 콜롬비아 전 재무장관과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 나이지리아 재무장관도 후보로 나섰다. 세 명의 후보가 경선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세계은행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이 그만큼 도전을 받고 있다는 얘기다. 김 총장은 이에 따라 지지를 이끌어 내기 위해 아프리카·아시아·남미를 순방할 예정이다.
김 총장은 세계은행의 역할이 과거와 달라졌다는 점을 부각할 것으로 보인다. 과거 세계은행은 주로 개도국의 도로·항만 건설 등 경제 개발에 차관을 지원했다. 한국이 대표적인 수혜국이다. 영동고속도로, 서울·부산·대구 지하철, 부산·묵호항 등도 세계은행 차관으로 건설했다. 그러나 최근엔 아프리카·중남미 최빈국의 질병·가난 퇴치로 세계은행 사업의 무게중심이 옮겨 가고 있다. 20여 년 동안 아프리카와 중남미 등에서 에이즈와 결핵 퇴치에 매진해 온 김 총장은 이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전문가로 꼽힌다.
오바마가 김 총장을 발탁한 것도 이 같은 전문성을 높이 산 것이라고 AP통신이 전했다. 1990년대 페루의 수도 리마에서 악성 결핵이 창궐했을 때 세계보건기구(WHO)도 속수무책이었다. 치료제가 너무 비쌌기 때문이다. 하버드대 의대 교수였던 그는 복제약 도입을 제안했다. 그러나 WHO는 자칫 결핵균의 내성만 키울 수 있다며 난색을 표했다. 그러나 그는 오리지널 치료제보다 95% 싼 복제약을 대량으로 들여와 결핵을 퇴치하는 데 결정적인 공을 세웠다. 2004년 WHO 에이즈국장에 취임한 그는 2005년까지 300만 명의 아프리카 빈민 환자에게 에이즈 치료제를 공급한다는 ‘3-5 계획’을 발표했다. 주변에선 ‘비현실적 탁상공론’이라고 비웃었다. 그러나 현재 그의 프로그램에 따라 700만 명의 아프리카 에이즈 환자가 치료받고 있다.
김 총장의 발탁은 구호현장에서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을 만난 게 계기가 됐다. 김 총장은 하버드대 동창이자 아프리카·중남미 구호활동의 동지인 폴 파머 하버드대 교수와 아이티 가난 퇴치활동을 꾸준히 벌여 왔다. 파머는 클린턴과 친분이 있는 인도주의 활동가다. 오바마가 세계은행 총재 인선으로 고민하자 클린턴이 부인인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을 통해 김 총장을 오바마에게 천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은 23일(현지시간) 정례 브리핑에서 “김 총장을 만나 처음으로 세계은행 총재직을 제안한 사람은 클린턴 장관”이라며 “클린턴 장관과 가이트너 재무장관이 김 총장 안을 강력하게 지지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가이트너는 다트머스대 출신이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짐 킴(미국명)은 내 친구인 파머와 함께 아이티에서 페루·말라위까지 보건의료와 희망을 배달한 인물”이라며 “오바마는 탁월한 선택을 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