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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공간에 있는 정보, 기계도 인식할 수 있게 된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영국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인 팀 버너스-리(45)는 10년 전 컴퓨터를 이용해 단일한 세계적인 데이터 창고를 이용할 수 있게 해주는 월드 와이드 웹(World Wide Web)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당시 버너스-리는 제네바에 있는 국제 물리학 연구소 CERN에서 일하고 있었다. 자신의 발명품을 상용화할 기회를 마다해 온 버너스-리는 현재 미국 매사추세츠 공대(MIT)에 본부를 둔 월드 와이드 웹 컨소시엄의 소장으로 있으면서 웹의 미래를 설계하는데 기여하고 있다.

그는 또 사이버 공간에 저장된 데이터를 기계가 인식할 수 있도록 해주는 ‘시맨틱 웹’(Semantic Web)을 개발하고 있다. 윌리엄 언더힐 기자가 최근 런던에서 그를 만났다.

시맨틱 웹이 그토록 중요한 이유는.

시맨틱 웹은 인간뿐만 아니라 기계도 정보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는 기술을 말한다.

지금은 정보가 인간의 소비를 위해서만 처리되고 있다. 따라서 그 정보를 기계가 인식할 수 있도록 재처리하려면 먼저 가공되지 않은 데이터로 분해돼야 한다. 상당히 번거로운 일이다.

예컨대 한 도시의 날씨 정보가 웹에 등장한다면 인간이 보기에는 좋을지 모르지만 컴퓨터는 어떤 숫자가 기온을 나타내는지 알지 못한다.

시맨틱 웹은 어느 숫자가 기온인지를 표시하는 코드를 눈에 보이지 않게 집어넣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10년 전부터 이것을 말로만 토론해왔지만 이제 실현이 되고 있다. 매우 흥분된다. 마치 옛날로 돌아간 느낌이다.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가.

나를 10년 전에 인터뷰했다면 나는 하이퍼텍스트 공간(월드 와이드 웹의 기초)에 대해 “문서들의 공간이 있고 각 문서에는 주소가 있으며, 문서의 텍스트는 그 이면에 코드로 집어넣은 주소를 통해 연결될 수 있으므로 그것을 클릭만 하면 그 주소로 가게 된다”고 설명했을 것이다.

그러면 기자들은 “글쎄요,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네요”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처럼 시맨틱 웹은 전혀 새로운 개념의 총체적 인프라다.

웹에 대해 아직도 책임감을 느끼는가.

몇 년 전 웹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그때 난 웹을 청소년에 비유했다. 자신의 내재된 힘을 느끼기는 하지만 무엇을 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은 상태이며 많은 관심과 지도를 필요로 한다는 뜻이었다.

웹은 지금도 그런 상태지만 난 더이상 책임을 느끼지 않는다. 훨씬 더 넓은 공동체가 웹을 주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사회적인 문제 같은 것은 법적·정치적 절차에 의해 해결되고 있다. 초기에는 웹을 이해하는 사람이 기술자밖에 없었기 때문에 모든 것을 기술자가 책임져야 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웹의 발달과 관련해 우려하는 바는.

사생활 침해가 우려되지만 극복할 수 없을 것으로는 생각지 않는다. 그보다는 ‘디지털 격차’의 문제가 좀더 우려된다. 인터넷은 선진국에서 훨씬 더 조밀하게 연결돼 있다.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인터넷을 통해 제3세계와 여타 세계의 통합이 가속화될 기회를 맞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언젠가 아프리카에서 선교사로 활동했던 사람에게 인터넷이 도움이 되는지 여부를 물어본 적이 있다. 그녀는 성경을 통해 독학으로 영어를 배워 이제는 인터넷으로 받은 영어 문서를 현지어로 번역하며 살아가는 한 여성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주 간단한 수준의 언어를 통해 기술적·문화적으로 연결될 수 있다면 웹은 과거에는 불가능했던 방식으로 수입을 얻게 해주며 지역사회 전체를 도울 수도 있다. 인터넷만 주어지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들어온 정보를 처리해서 보내주면 되는’ 일거리가 아주 아주 많다.

웹이 아니라 인터넷의 발명자라는 말을 들을 때 화가 나지는 않는가.

그럴 때는 당혹스럽다. 인터넷은 웹보다 20년 앞서 발명됐다. 내가 웹의 기초를 만들자 인터넷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그것을 활용한 것 뿐이다.

웹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렸는데 후회는 없는가.

없다. 돈을 받기 위해 웹사이트의 중앙 등록방식을 취했더라면 웹은 절대로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특허제가 됐다면 많은 사람들이 그와 유사한 것을 경쟁적으로 개발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지금의 웹처럼 상호사용이 가능한 형태로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20년 후 웹은 어떤 평가를 받을 것으로 보는가.

그때쯤이면 사람들은 웹을 지금의 종이처럼 생각할 것이다. 그들은 웹이 하나의 획기적인 현상이 아니라 당연한 것으로 간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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