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참 성공은 자신의 설계대로 사는 인생”

중앙일보

입력

벤처 기업은 하나의 커뮤니티가 되어야 합니다. 서로 나누고, 기술·지식·문화를 공유하는 공동체를 지향해야 합니다. 폐쇄적으로 운영돼선 가망이 없어요. 우선 내가 내 놓을 수 있어야죠.”

바이오 벤처 업계의 ‘기린아’ 인바이오넷을 이끌고 있는 구본탁 사장(38)은 벤처 기업인의 자질로 ‘오픈 마인드’를 강조했다.

미생물 농약 등 산업용 미생물 균주를 만들어 내는 인바이오넷은 ·1962년 서울生
·연세대 생물공학과卒, 연세대 대학원 식품생물공학 석·박사
·87∼96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생명공학연구소 생물제어연구실 선임연구원
·96년 인바이오넷 전신 한국미생물기술 사장
·2000년 (주)인바이오넷 사장, 現 한국바이오벤처협회 부회장,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선정 ‘3월의 중소기업인’지난 5월 대덕연구단지의 한효과학기술원을 전격 인수하고 이곳에 바이오 벤처 ‘연합전선’ 대덕바이오커뮤니티를 구축,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한효기술원은 법정관리하에 있는 한일합섬이 지난 96년 4백50억원을 투자해 지은 국내의 대표적인 생명공학연구소. 인바이오넷은 홍콩 유로금융시장에서 액면가의 1백20배로 전환사채를 발행해 조달한 달러로 이 알짜배기를 인수했다. 자본금 20억원 규모의 벤처가 국내 유수의 대기업이 일군 1백75억원짜리 연구소를 먹어치운 것이다.

“고민 많이 했습니다. 오래 살진 않았지만 내 인생에서 최고의 결정이었죠. 몇 날 며칠 밤 장고끝에 결심을 했습니다.”

땅이 워낙 넓고 건물이 화려하다 보니 벤처가 연구개발(R&D)은 뒷전이고 부동산 투기를 한다는 시선이 따가웠다. 나름의 논리가 있어야 했다. 5년 후 매출액 1천억원이라는 비전을 제시하고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성장 엔진’이 필요하다고 설득했다. 때마침 전환사채를 발행해 자금 조달엔 문제가 없었다.

''007 작전’을 방불케 하는 인수전에서 2개사 이상의 경쟁자를 물리치고 그는 마침내 대덕연구단지에 베이스캠프를 칠 수 있었다.

그러느라 비용도 치렀다. 회계처리 미숙이 문제였지만 한효 인수에 앞서 추진했던 코스닥 등록이 무산된 것이다. 회계 처리가 미숙했던 것은 공인회계사의 전문적인 조언을 접할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덕 밸리의 벤처 생태계는 아직 자기완결적인 구조를 갖추지 못했다. 상법 전문 변호사 한 명 없고, 법무사들조차 액면 분할이니 프리미엄 증자니 하는 얘기를 알아듣지 못한다. 컨설팅 회사도 없다. 그런 점에서 대덕 밸리는 여전히 ‘외로운 섬’이다.

인바이오넷은 농업·환경 등의 분야에서 30여 가지의 제품, 즉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생물농약 구실을 하는 사료 첨가용 미생물, 기름으로 오염된 토양을 생물학적으로 정화하는 미생물 같은 것들이다. 98년 생물공학기술로는 최초로 미국의 세계적인 생물농약기술회사 마이코젠에 미생물과 유전자를 수출했다.

나라 안을 온통 떠들썩하게 만든 ‘사이비 벤처 기업인’ 정현준씨의 행각은 작지만 강한 인바이오넷에도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구사장은 코스닥 등록 재심사가 진행되는 도중 터진 이 사건으로 인바이오넷의 코스닥 진입이 지연될 것으로 내다봤다.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난 거죠. 이번 사태를 계기로 다시는 누구도 그런 꿈도 못 꾸도록 안전장치를 만들어야 합니다. 크게 보면 벤처 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한 비용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벤처라는 말조차 생소했던 4년여 전 생명공학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있던 구사장이 사업가가 되기로 마음먹은 것은 상용화할 수 있는 연구성과를 내 놓아도 이를 활용하겠다는 기업이 없었기 때문이다.

“10년 가까이 연구해 생물농약을 개발했지만 이를 만들어 보겠다는 기업 파트너를 잡을 수 없었습니다. 10년 공부가 도로아미타불이 되는 순간이었죠. 연구성과가 페이퍼로만 남을 판이었으니 말이에요. 그런 연구에 평생 매달릴 필요가 있느냐는 회의가 들었습니다. 죽을 때 후회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 창업한 겁니다.”

96년 5월 연구원창업지원제도의 첫 수혜자로 시험대에 오른 그는 휴직기간이 만료된 지난 4월 말 4년 만에 정식으로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생명공학연구소를 퇴직했다.

햇수로 10년, 첫 직장이었던 연구소에서 만난 상사들은 어떤 형태로든 그의 모델이 됐다. 어떤 리더십의 소유자가 되어야 하는지를 그는 주위의 선배들로부터 배울 수 있었다. 세 사람이 길을 가도 그 가운데 스승이 있다고 했던가. 그 중엔 물론 반면교사(反面敎師)도 있었다.

그렇게 벤처 기업 사장이 됐지만 사업이 적성에 맞다고 느끼게 된 지는 1년이 채 안 된다. 연구소 시절 그는 오히려 소극적인 성격에 남들 앞에 나서기를 꺼리는 타입이었다. 혼자서 하는 일에 잘 빠져들고 연구에만 몰두했었다.

지금의 성격과는 정 반대였지만 사업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건 남들이 생각 못하는 것들을 발상해 내는 발명가 기질이 있었기 때문이다.

“창업가의 자질과 통하는 기질이죠. 창업 초기단계서 이런 기질이 도움이 됐습니다.”

30대 중반에 벤처 기업인으로 변신하며 성격을 스스로 개조한 그는 그러나 지금 시대가 요구하는 기업인으로서의 자질은 네트워커로서의 적성이라고 말한다. 사람·기술·자본·경영 등 기업경영에 필요한 요소와 자원들을 엮는 능력이 기업인으로서의 성공을 좌우할 것이라는 얘기다.

나아가 그는 미래의 기업은 네트워크상에 존재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능력 있는 사람들의 네트워크와 그 속에 존재하는 비즈니스 모델이 기업의 구성요소가 될 겁니다. 지금의 개념으로는 회사라고 할 수도 없죠.”

네트워킹이 가장 중요한 이데올로기이자 패러다임이라는 그의 관점은 인바이오넷이라는 상호에도 담겨 있다. 올초 한국미생물기술로부터 개명(改名)된 인바이오넷은 ‘혁신적인(Innovative) 생명공학기술(Bio-technology) 네트워크’의 합성어다.

네트워킹은 벤처 기업인으로서 그가 자신의 회사를 기성의 기업들과 차별화하는 포인트이기도 하다. 기성의 기업들이 고객 지향적이었다면 그는 “기술과 지식을 이어 주는 네트워크를 지향한다”고 말한다. 매출이 아무리 늘어나도 직원수가 50명이 넘지 않도록 하겠다는 생각도 그의 이런 기업관과 무관치 않다. 지금 직원수는 40명.

그는 기업의 외형을 키우기보다 벤처를 계속 창업시키겠다고 말한다. ‘세포분열’이다. 이미 3명의 사장을 배출했다.

“최다 1백명까지 사장을 만들어 내보내는 게 꿈이에요. 우리나라가 경제적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창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계속 양성돼야 합니다. 누구나 창업가가 될 순 없지만 창업을 하든 않든 창업가 정신만큼은 모두가 공유할 필요가 있어요.”

그는 자신의 경우 연구원으로 남았을 때보다 최대 5배는 더 성장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구사장은 바이오 벤처야말로 투자에 따르는 위험도가 높고 성공하면 수익률도 높은 전형적인 벤처라고 믿고 있다.

"돈이 많이 들고, 무엇보다 상품화에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의약쪽은 최소 10년, 보통 15년은 걸리고 농업이나 환경쪽도 길면 5년씩 걸리죠. 왜 빨리 성과가 나오지 않느냐고 채근하기보다는 기다려 주는 투자자가 필요합니다. 반면 부가가치가 높습니다.”

지난해 17억5천만원의 매출을 올린 인바이오넷의 세후 순이익률은 58%. 1백원어치 팔아 세금을 내고도 58원을 남긴 셈이다. 특히 미생물 제품의 경우 없는 상품을 창출해 키워 내는 것이기 때문에 소재를 필요로 하는 굴뚝산업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원가가 싸게 먹힌다.

보건소에서 맞아도 1만원 이상 하는 간염 백신의 제조원가는 몇 십원에 불과하다. 이렇게 ‘폭리’(?)를 취할 수 있는 건 무엇보다 개발에 막대한 시간과 돈이 들기 때문이지만 기본적으로 나만 만드는 제품이기 때문이다. 부르는 게 값이란 얘기다.

돈을 많이 벌면 그는 좋은 연구소를 하나 지을 생각이다. 국내의 모든 벤처들이 공유하는, 세계적으로 경쟁력이 있는 연구소. 미국의 벨연구소, 독일의 막스 프랑크 연구소가 그 모델이다.

“산업체들에, 필요로 하는 기술을 공급해 줌으로써 스스로 수익을 창출하는 그런 역동적인 연구소를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어느 새, 어쩔 수 없는 연구원 출신 CEO로서의 얼굴을 드러내 보였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