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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금 모으기'로 회생 몸부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정몽헌(鄭夢憲)현대아산 회장이 6일 현대건설을 제외한 나머지 보유 주식을 내놓는 사재 출자 카드를 제시한 것은 정부와 채권단의 압박에 배수진을 친 것으로 보인다.

현대그룹은 다른 계열사는 모두 버리더라도 현대건설만은 살리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설명했다.

현대는 이날 ▶정부와 채권단이 계속 요구해온 오너 회장의 사재 출자로 화답하면서▶전.현직 임직원의 '현대 살리기 모금운동' 도 공개했다. 오너와 임직원이 '한마음' 으로 현대건설 살리기에 나섰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현대는 이와 함께 남이 탐낼 만한 돈이 되는 우량 계열사를 매각하는 등 '큰 그림' 을 곧 내놓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네차례 발표한 보유 주식.부동산 매각 위주인 자구계획에서 벗어나 현대건설의 부실을 근본적으로 털어낼 수 있는 그룹 차원의 대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그룹의 체력으로 볼 때 현대건설의 부채를 근본적으로 해소할 만한 처방이 나올지는 의문이다.

◇ 우선 급전으로 4천억원 마련=현대는 채권단이 만기를 연장해 주기로 한 기존 회사채와 기업어음(CP)을 제외한 진성어음을 결제하기 위해 4천여억원의 자금을 우선적으로 확보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오너인 정몽헌 회장이 우선 모범을 보이기로 했다. 鄭회장은 자신이 그룹을 장악하면서 대주주로 남기 위해 보유해온 현대전자.현대상선.현대종합상사.현대석유화학 주식을 매각하기로 했다.

鄭회장이 사실상 전재산을 내놓는 모양새를 갖춘 것은 이 돈으로 현대건설이 자금난을 벗어난다기보다 정부와 채권단.시장을 설득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현대의 뿌리인 현대건설을 살리기 위해 임직원과 친인척의 협조를 끌어내려는 계산도 깔려 있다.

이에 맞춰 현대건설의 퇴직 임직원 모임인 현건회(회장 주찬응)회원 4백80명이 현대건설 예금계좌에 1백만원에서 수천만원씩 송금하기로 했다.

현재 근무 중인 임직원들도 회사 살리기 운동 차원에서 '서산농장 한평 사기' 운동을 벌이기로 했다.

현대 관계자는 "서산농지 땅 갖기 운동을 통해 전.현직 임직원 1만여명이 1인당 3천만원씩만 갹출해도 3천억원에 팔 수 있다" 고 말했다. 그러나 기업의 자금난을 임직원의 호주머니에 호소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지적도 있다.

현대는 서산농장의 장부가격이 6천5백억원이고 공시지가가 3천4백억원인데 정부가 2천억원 이상은 곤란하다는 입장이어서 차라리 임직원의 회사 살리기 운동으로 처분하는 쪽을 선택했다.

鄭회장과 전.현직 임직원의 이같은 움직임은 특히 계열.관계사의 비협조적인 자세에도 자극을 줄 것으로 현대그룹은 보고 있다.

현대는 현대건설이 보유한 현대아산 등의 비상장 주식을 계열.관계사가 협조해 매입해주면 적어도 1천억원 이상의 자금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는 문제가 되고 있는 해외 신주인수권부사채(BW)8천만달러(약 9백억원)에 대해 6일 현재 소지자 대부분이 조기 상환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져 단기자금이 급박한 상황이다.

현대는 해외 채권자와 조기 상환을 철회하도록 협상을 벌이는 한편 다른 곳에서 긴급 자금을 마련해야 할 정도로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

◇ 우량 계열사 매각 카드도 준비=현대는 현대전자.현대정보기술 등 우량 계열사를 매각해 추가 자금을 확보할 계획이다.

정부와 채권단은 현대건설의 유동성 위기가 불거질 때마다 현대전자 등 계열사 매각을 요구해왔다.

이에 대해 현대전자측은 지난달 26일 '매각설은 사실무근' 이라며 증권거래소에 공시했다.

현대전자는 현재 일본의 한 반도체 회사와 경영권 이전 절차를 추진 중이라거나 대만의 반도체 업체가 50억달러를 제시했다는 등의 소문도 구체적인 업체까지 거명되며 나돌고 있다.

이에 대해 현대전자는 반발하고 있다. 현대전자는 지난 5일 재무상태와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미국 시티그룹을 경영 자문역으로 선임했다는 자료를 배포했다.

이는 현대건설 등 다른 계열사를 도울 수 없고, 계열사 지분을 모두 매각해 현대로부터 독립적으로 경영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현대전자측은 현대전자를 매각하더라도 현대건설에 실익이 없다고 강조했다. 현재 현대측이 보유한 현대전자 지분은 정몽헌 회장이 1.7%, 현대중공업과 현대상선이 각 9%로 20%에 못미친다.

현대전자 관계자는 "5억주의 발행주식 가운데 현대 오너와 계열사 지분은 1억주에도 못미쳐 시가대로 매각하더라도 8천억원밖에 안돼 현대건설의 유동성 문제를 해결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며 "현대중공업과 현대상선이 보유 주식을 팔아 현대건설을 돕는다면 소액주주들이 가만히 있겠느냐" 고 주장했다.

현대는 이밖에도 현대정보기술과 현대아산 등 상장.비상장 계열사를 막론하고 돈이 될 만한 기업을 팔아 현대건설을 살리는 데 쓰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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