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출판읽기]추천도서 목록 구미·고급편향 탈피할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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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신문에서 하나의 저작물이 고전 대접을 받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는 이야기를 읽고 한참 웃은 적이 있다.

먼저 유명해야 하고, 역설적이긴 하지만 읽는 사람이 거의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고전에 대한 정의 가운데 이만큼 그럴듯한 것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던 이유는 무엇일까.

교수 생활을 하면서 추천 도서 목록이라는 것을 몇 개쯤 접해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추천 도서 목록들을 보면, 어찌 그리도 읽기에 지겨운 이른바 고전들만 골라 열거해 놓았는지! 실로 성적표보다 더 마음을 심란케 했던 것이 추천 도서 목록이 아니었던가!

보지 않아도 뻔한 것이 플라톤의 '국가론' 에서 시작해 구미의 저작물들이 주류를 이룬다. 비슷한 목록을 하도 되풀이해서 보다 보니, 이를 작성하는 분들의 마음 속에 일종의 모범 답안이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심이 갈 정도다.

문제는 학교 선생들뿐만 아니라 출판사나 언론도 비슷한 모범 답안을 갖고 있는 듯하다는 데 있다.

이들이 관심을 갖는 저작물들을 보면, 두 가지 느낌을 준다. 하나는 이 세상에는 구미밖에 없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그러나 구미는 세계의 일부분이지 전부가 아니다. 과연 아시아와 아프리카, 그리고 라틴 아메리카는 어디에 있는지.

또 그 지역 저자들의 고뇌와 저작 활동이 있으며, 또한 인간성의 깊이와 넓이를 보여 주는 뛰어난 일급 저작물은 어디에 있는지 묻고 싶다.

또 하나, 고급문학과 대중문학 사이의 엄격한 분할과 경계선이 있는 것 같은 느낌도 피할 수 없다.

포스트모던해진 대중사회에 대중출판물이 적절한 존재 가치를 확인치 못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구미에 대한 우리의 편향성, 고급과 대중문학 사이의 경계선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우리의 역사적.사회적.심리적 현실과 그 현실을 가능케 한 과거에 대한 검토를 요구하는 이 같은 물음에 모범 답안은 없을 것이다.

모범 답안이 보장하는 성적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듯이, 문화적 모범 답안이 보장하는 지식과 교양이 문화의 전부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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