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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무관세 미국 제품 넌 얼마까지 사봤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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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대학생 이창우(25)씨는 지난달 해외 구매대행 사이트를 통해 170달러짜리 미국 ‘누디진’ 청바지를 샀다. 이씨가 구매하는 데 들인 돈은 총 23만원. 배송료와 구매 수수료, 관세가 포함된 금액이다. 지난 15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되자 이씨는 아쉬움과 기대를 동시에 느꼈다. 청바지를 15일 이후에 구매했다면 관세 13%에 해당하는 2만2000원을 아낄 수 있었다. 200달러 이하 물품의 미국발 특송화물에 부과되는 관세가 FTA로 폐지됐기 때문이다. 부담이 준 만큼 이씨는 앞으로 해외쇼핑을 더 늘릴 생각이다.

 #평소 인터넷으로 제이크루, 아르마니 익스체인지 같은 미국 브랜드 의류를 사는 대학원생 김윤영(24·여)씨는 며칠째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한·미 FTA 발효로 해외 구매의 면세 한도가 올랐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자주 가는 구매대행 사이트마다 이에 대한 공지가 달랐다. 어떤 사이트는 “200달러까지는 관세가 붙지 않아 가격이 내려간다”고 알린 반면, 다른 사이트에서는 “사실상 변한 것이 없고 면세 기준은 기존처럼 배송료 포함해 15만원이다”라고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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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미 FTA 발효로 ‘해외구매족’이 들썩이고 있다. 지난 15일 0시부터 개인이 사용하기 위해 미국에서 들여오는 일부 특송화물의 면세 한도가 100달러에서 200달러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미국산(made in USA)이 아니어도 배송지만 미국이면 된다. 인터넷 포털의 쇼핑 관련 카페에는 “200달러 토리버치 지갑, 150달러 폴로 점퍼도 무관세로 살 수 있는 것 맞느냐”는 글들이 줄이어 올라오고 있다. 이런 미국 브랜드의 의류·잡화는 국내에 수입된 제품을 살 경우 FTA 효과를 누릴 수 없었다. 대부분 원산지가 미국이 아닌 중국·동남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터넷 구매대행 사이트를 통해 미국에서 구입해 우편으로 받으면 원산지에 관계없이 잡화 8%, 의류 13%의 관세를 물지 않아도 된다.

 한편으로는 혼선도 빚고 있다. 이번 면세 한도 조정이 모든 구매대행 업체에 해당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해외 구매 인터넷 카페·블로그에서는 “200달러 면세가 된다” “예전과 달라진 것이 없다”는 상반된 주장으로 공방이 일어나기도 한다. 관세청으로도 소비자들의 면세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

 관세청 특수통관과 문태준 과장은 “구매하려는 사이트가 관세청이 지정한 ‘특별통관대상업체’인지, 구입하려는 물건이 ‘목록통관 배제 품목’은 아닌지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관세청은 관세 관련 법규를 잘 지킨 인터넷 업체들을 ‘전자상거래 특별통관대상업체’로 지정하고 있다. 이들이 국내 고객을 대신해 미국에서 구매해 들여오는 200달러 이하 제품이 이번 관세 면제에 해당된다. 이에 대해서는 국내 택배처럼 보내는 이와 받는 이의 주소지, 물품명만 확인한다.

 면세 물품 종류도 정해져 있다. 의류·신발·핸드백·식기·가구·아동용품·CD·DVD 등은 해당되지만 화장품이나 비타민·의약품·식품은 제외다. 의류·가방이라도 ‘짝퉁’이라 불리는 가품은 제외된다. 총 구매 가격이 200달러 이하라 해도, 10달러 제품을 20개 구매하는 식으로 같은 제품을 여러 개 산 경우 ‘개인 용도’가 아닌 ‘판매용’으로 의심받아 세금이 부과될 수 있다.

 지난 16일 관세청은 해외구매 대행 업체들을 불러 공청회를 열고 이 같은 사실을 알렸다. 이에 따라 특별통관대상업체들은 관세 철폐분을 반영한 가격 조정에 들어갔다. GS샵이 운영하는 해외구매 대행 ‘플레인’은 이번 주부터 토리버치, 포트메리온 같은 미국 배송 상품의 가격을 2만~4만원씩 내렸다. 30만9800원에 판매되던 ‘마이클 코어스 젯셋 미디엄 트래블 토드백’은 27만9800원, ‘토리버치 페이턴트 레더 월렛’은 35만9800원에서 33만9800원으로 각각 조정됐다. 면세와 관련해 기획전도 열었다. ‘파타고니아 토렌쉘 바람막이 재킷’은 25만2800원에서 19만3320원, ‘포트메리온 포모나 밥공기&국대접 8개 세트’는 26만5810원에서 20만9800원으로 가격을 내려 판매하고 있다.

 판매 품목도 늘릴 계획이다. 기존에는 100달러가 넘어가는 제품은 관세가 추가되면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면세 한도가 200달러로 올라간 만큼, 현지가격 100~200달러대 제품을 추가 입고할 예정이다. GS샵 플레인 담당 박형민 대리는 “중가 명품이나 브랜드 의류 다수가 새로운 면세 범위 가격대에 포진해 있다. 해외 브랜드 봄 세일도 시작돼 소비자 체감 할인율이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베이의 국내 공식 해외구매 대행 사이트인 ‘이베이쇼핑’ 역시 15일부터 미국 물류센터로부터 배송되는 상품에 대해 면세 가격을 적용하고 있다. 현지 가격 189달러의 전자시계의 경우 15일 전에는 국제운송료·수수료·세금을 포함해 30만8000원으로 가격을 책정했지만, 현재는 관세가 면제돼 4만원가량 할인 효과를 볼 수 있게 됐다.

 구매 대행업계 1위인 위즈위드도 가격 조정 작업에 들어갔다. 이 사이트에서 현재 21만9800원에 판매하는 제이크루 밀리터리 재킷은 18만2200원으로, 린다 패로우 ‘알렉산더 왱’ 선글라스는 35만원에서 31만3900원으로 관세를 빼고 가격을 새로 매길 계획이다.

 이번 면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인터넷 쇼핑몰(특별통관대상업체)은 현재 72곳이다. 2008년까지만 해도 601곳에 달했지만 제도를 악용해 불법 수입을 하는 업체가 늘자 관세청이 2009년부터 지정 요건을 강화한 결과 현재같이 수가 줄었다.

 이렇다 보니 특별통관대상업체가 아닌 인터넷 쇼핑몰 중 일부는 고객들에게 사실과 다른 내용을 공지하는 ‘꼼수’를 부리기도 한다. 인터넷에 “FTA로 200달러까지 배송 면세가 되었다지만 사실은 변한 것이 없으니 예전처럼 구매하라”고 공지하는 식이다. 관세청은 홈페이지에서 특별통관대상업체 지정 여부를 조회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심서현·위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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