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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캘린더] 리버 피닉스,그의 죽음을 기억하며

중앙일보

입력

죽어서도 여전히 그리운 사람들이 있다. 동시대를 함께 보냈던 사람들은 더욱 그럴 것이다. 쉽게 잊혀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죽어서도 영영 지워질 것 같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10월 31일. 평범한 사람들에겐 대중가요의 가사처럼 '10월의 마지막 날'이란 의미 외에는 없는 이날 두 사람의 아름다운 영혼이 운명을 달리했다. 바로 이탈리아 영화의 거장 페데리코 펠리니와 '아름다운 청년' 리버 피닉스(River Phoenix)
이다.

1993년 10월 31일 오전 1시 할로윈의 밤. 당시 리버 피닉스의 라이벌이자 절친한 친구였던 또 다른 청춘스타 조니 뎁이 운영하는 LA의 유명한 나이트클럽 '바이퍼 룸' 앞에는 유령과 마녀 복장을 한 흥겨운 젊은이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그중엔 리버 피닉스와 그의 동생 호아킨 피닉스도 끼어 있었다.

온갖 종류의 청춘들이 모여든 나이트클럽 사람들 중 누구도 길가에 쓰러져 경련을 일으킨 리버 피닉스를 유심히 보지 못했고 급히 시더스 시니이 의료센터로 옮겨졌지만 끝내 일어서지 못한 채 짧은 생을 마감했다. 사인은 과다한 약물 복용. 언론의 지나친 관심과 팬들의 기대감, 너무 일찍 성공한데서 오는 정체성의 혼란스러움은 그로 하여금 약물에 의지하게 만들었으며 결국 그를 앗아간 원인이 되었다.

생일 마감하기엔 너무나도 젊은 스물 셋의 나이였기에 많은 팬들은 안타까워했다. 리버 피닉스만큼 짧은 생을 살았지만 강렬한 기억으로 남는 연기자도 드물 것이다. 마치 제임스 딘처럼 말이다.

잊을 수 없는 구스 반 산트 감독의 '아이다호(My Own Private Idaho)
'로 기억되는 리버 피닉스는 1970년 8월 23일 시인이자 작곡가인 아버지 존과 진보적인 성향의 어머니 앨린 사이에서 맏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자유주의자이자 히피였던 두 부모를 따라 이상향을 헤매던 그는 아홉 살이 돼서야 겨우 플로리다에 정착할 수 있었다.

80년 그의 어머니가 친구인 페니 마샬 감독의 소개로 방송국에 취직하면서 연예계와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CF 모델로 출발했지만 그리 영악하지 못했던 탓인지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하지만 TV드라마를 통해 인기를 얻기 시작했고 이후 영화로 영역을 넓혔다. 1985년 롭 라이너 감독의 '스탠 바이 미(Stand By Me)
'에 출연, 큰 성공을 거두면서부터 스타덤에 올랐다. 그의 나이 열 다섯 살 때의 일이다.

스티븐 호킹의 중편을 영화화한 '스탠 바이 미(Stand By Me)
'는 지방 마을에 사는 네 명의 문제아들이 기차에 치여죽은 친구의 시체를 찾아 떠난다는 내용으로 롭 라이너는 어린 리버의 잠재력을 어렵지 않게 파악했다. 서툰 연기 속에 담긴 알 수 없는 혼돈과 깨질 듯한 위태로움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의 판단은 적중했고 '스탠 바이 미(Stand By Me)
'는 비평과 흥행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

시드니 루멧 감독의 '허공에의 질주(Running On Empty)
'에선 끝없는 도주길에 오른 가족의 정체성과 자신이 살고싶은 인생 사이에서 갈등하는 10대의 역할을 맡아 가슴 찡한 연기를 선보이며 아카데미 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도망자 생활을 하는 가족의 서글픔이 가장 진하게 전달되는 장면은 늘 위축된 듯 어깨를 움츠리고, 여자친구에게 사랑을 느낄 때도 손길과 표정에 주저하는 마음이 절절이 배어있는 리버 피닉스의 연기를 통해서다.(사실, '아이다호

My Own Private Idaho)'와 더불어 이 영화만큼 리버 피닉스의 매력이 돋보이는 영화도 없다. 최근에 비디오로 재출시 되었으니 꼭 한번 보시길.)

89년 출연한 '인디아나 존스 3-최후의 성전(Indiana Jones And The Temple Of Doom)
'에서 어린 인디아나 존스를 연기한 그는 로렌스 캐스단 감독의 '바람둥이 길들이기(I Love You To Death)
'에서 만난 키아누 리브스와 함께 '아이다호(My Own Private Idaho)
'에 출연했다.

리버 피닉스는 '내게 있어서 처음으로 나의 상상력을 영화에 반영한 작품이다'이라고 말할 만큼 이 작품에 남다른 애정을 쏟았다. 죽음을 감지한 듯한 그의 몽롱한 연기 덕분에 전 세계 언론의 극찬을 받으며 베를린 영화제와 토론토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이 영화에서 리버 피닉스는 갑작스럽게 잠이 쏟아져 의식을 잃는 '기면발작증' 환자로 나온다. '바이퍼 룸' 앞 길가에서 경련을 일으키며 쓰러져 차갑게 식어 갔을 때 많은 사람들은 '아이다호(My Own Private Idaho)
'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렸을 것이다. 영화 속 그의 이미지와 현실이 오버랩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팬들은 더욱 안타까워했는지도 모른다. 아직도 영화를 통해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으며 다시금 스크린에서 걸어 나올 것만 같기 때문이다.

그가 죽음으로 향하는 동안 미쳐 완성하지 못했던 연기자의 길을 동생인 호와킨 피닉스가 이뤄지길 바라는 건 너무 큰 기대일까?

"전 광고에는 맞지 않았어요. 큐 싸인이 나도 전혀 웃을 수가 없었거든요. 그건 상품을 파는 건데 도대체 누가 그 상품을 소유하는 거죠? 전 그 모든 것을 정말 싫어했어요. 물론 그 돈으로 집세를 낼 수는 있었지만 말이죠. 나조차 내가 하는 말을 믿지 못하는데 내가 어떻게 크렌베리 주스를 마시라고 말할 수 있겠어요?" 너무나 순수했던 리버 피닉스의 말이 아직도 귓전에 울린다.

조은성<filmboy@neofil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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