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나도 좌클릭 … 대한민국號, 왼쪽으로 전복될 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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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1 총선의 여야 공천에서 떨어지고도 주목받는 두 사람이 있다. 새누리당에선 친박(친박근혜)을 자처하는 김무성 의원, 민주통합당에선 경제관료 출신의 강봉균(69·사진) 의원이다. 두 사람이 공천 탈락한 데 대해 ‘왜’라며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사람이 많다. 강봉균 의원의 경우 정보통신부 장관과 재정경제부 장관을 지낸 정통 경제관료 출신이다.

그는 호남이 배출한 경제관료 3인방(전윤철·진념·강봉균) 중 한 명이다. 관료시절 ‘꾀 주머니’라는 별명도 있지만 경제정책과 국가비전에 대해선 한 치의 양보 없이 격정적인 토론을 마다하지 않는다. 김대중(DJ) 대통령이나 노무현 대통령이 생존했다면 강 의원에게 과연 공천 탈락의 수모를 안겨 줬을까. 16일 오전 10시부터 세 시간 동안 강 의원을 만나봤다. 다음은 인터뷰 요지.

-민주통합당 공천 탈락 뒤 곧바로 정계 은퇴와 탈당을 선언했다. 굳이 탈당까지 한 이유는 뭔가.
“정치에서 손을 털 계기라고 생각했다. 정계 은퇴를 하려면 정당활동을 그만둬야 하지 않느냐. 탈당하지 않고 정계 은퇴를 한다는 건 앞뒤 안 맞는 얘기다.”

-낙천에 대한 섭섭함 때문인가.
“그렇다. 이번 19대 국회까진 국회의원을 하고 싶었다. 왜냐하면 국민 생활이 힘들어지고, 서민경제를 해결하라는 요구가 커지면서 민주당 집권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나처럼 경제위기 극복의 경험을 가진 경제관료 출신이 해야 할 역할이 많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민주당에서 ‘필요 없다’고 하니까 당에 더 남을 이유도, 정치를 더 할 목적도 사라졌다. 만약 무소속 출마를 한다면 결국 내가 국회의원 한 번 더하겠다는 욕심밖에 더 되겠나.”

-관료 출신 중 유능한 정치인으로 평가받는 이가 별로 없다. 왜 그런가.
“경제관료 출신들은 아무리 정권이 바뀌어도 경제만큼은 우리가 책임지겠다는 의식을 갖고 있다. 하지만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 ‘패거리 능력’도, 투쟁성도 없다. 반면 기성 정치인들은 자기 정당, 자기가 미는 후보가 정권을 잡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한다. 나는 한국 정치가 투쟁·대결이 아니라 정책 경쟁으로 진화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관료·경영인·학자 같은 전문가 그룹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작금의 이슈는 분배와 양극화, 복지 문제인 것 같다.
“한국은 1990년대까지 상대적으로 분배 격차가 작았던 나라라고 평가받는다. 하지만 98년 IMF 외환위기가 전환점이었다. 유례 없는 구조조정과 대량 실업에 직면했다. 앞으론 어떻게 해야 하나. 기업들이 ‘동일 노동, 동일 임금’ 원칙을 지켜야 한다. 요즘엔 아무리 학교 성적이 좋은 젊은이도 비정규직이거나 중소기업에 취직하면 대우를 받지 못한다. 기업경쟁도 그렇다. 자금이 풍부한 재벌 대기업은 뭘 하든 중소기업을 이길 수 있다. 공정하지 않다. 대기업은 세계시장을 개척하고 첨단사업 분야를 발전시켜야 한다. 유통·서비스시장은 국내 중소기업끼리 경쟁해도 충분하다. 왜 이런 분야에까지 재벌 기업이 잠식하는가. 기업가든 노동자든 노력한 만큼 대가를 받는 사회를 만드는 게 양극
화의 근본 해결책이다.”

-중장기적으로 볼 때 한국 경제의 과제는.
“대외적으로 개방을 추진하되 내부적으로 경쟁 질서, 분배 질서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한국이 동아시아에서 기를 펴고 살려면 일본 기술에 뒤처지지 않고 중국 대륙을 누빌 실력을 키워야 한다. 나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보다 한·중 FTA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동아시아 FTA, 나아가 경제공동체를 만들자는 게 내 지론이다. 그럴 경우 북한도 참여시켜야 한다. 경제공동체에서 더 나아가 집단안보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북한도 개혁·개방을 하지 않겠나.”

-정치권이 포퓰리즘 행태를 보이고 있다.
“포퓰리즘은 조금만 지나면 독약이 된다. 이걸 견제할 세력은 지식인과 전문가, 언론이다. 여야 정당도 선심성 공약을 더 내려 다투지 말고 상대방의 포퓰리즘을 과학적으로 비판하는 정책 경쟁을 하는 게 바람직하다. 중도에 서야 할 민주통합당이 사회주의적 색채가 강한 통합진보당 쪽으로 좌클릭하고, 보수 우익 쪽에 있을 새누리당까지 왼쪽으로 달려 간다. 그러면 결국 대한민국 호(號)는 왼쪽으로 기울어져 배가 전복된다. 어느 나라든 좌우 균형 속에 정권 교체가 이루어져야 건강한 나라다. 우리는 불완전하고 불안한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다.”

-선심성 정책 남발의 문제점은 뭔가.
“일일이 거론하기 힘들다. 하지만 엄청난 예산이 들어갈 복지 프로그램들을 발표하면서 ‘어디서 재원을 조달하겠다’고 밝히거나 ‘당신들이 세금을 더 부담하겠느냐’고 묻지 않는다. 공수표를 만들거나 나랏빚을 늘리겠다는 심산이다. 결국 국민을 속이는 것이다.”

-시대흐름상 복지 확대는 하나의 대세인 것 같다. 세수 확보는 어떻게 해야 하나.
“초·중등 학생의 무상급식엔 큰돈이 안 들어간다. 출산 장려나 보육·교육 같은 보편적 복지는 길게 보면 바람직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이런 돈은 결국 국민의 증세 동의가 있어야 해 굉장히 힘든 일이다. 무엇보다 우리 경제가 연 4~5%의 적정 성장을 하는 게 긴요하다.”

-강 의원은 증세와 함께 ‘예산 개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명박 정권 들어 국가재정이 상당히 왜곡되고 문란해졌다. 4대 강 사업을 한다며 지방정부, 수자원공사나 한국토지주택공사(LH) 같은 공기업의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위험수준이 됐다. 경제각료의 경험으로 볼 때 전체 예산의 5%쯤 절감할 수 있을 것 같다. 400조원 예산이라면 20조원쯤 만들어낼 수 있다.”

-민주당 공천 과정에서 한·미 FTA 반대에 소극적인 관료출신 의원들이 불이익을 받았다고 하는데.
“당 지도부는 공식적으로 부인했다. 민주당이 집권하려면 정체성이란 편향적 잣대로 나아가선 안 된다. 노무현 정부 때 시작한 한·미 FTA를 송두리째 반대하고 있는데 국내외에서 어떻게 생각하겠나. ‘주요 정책에 대해 언제든지 다른 말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비판을 받으면 국정이 제대로 운영되겠나.”

-정계 은퇴 선언문에서 재미있는 표현을 쓴 것 같다. ‘민주주의적 국가경영의 문제는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라는 대목이다.
“민주당의 공천 과정에서 편 가르기가 있었다. 국내 언론 매체를 두고도 당내에선 우리 편이냐 아니냐를 따진다. 사회 각계각층에 대해서도 그런다. 이러면 집권당이 될 수 있겠는가. 좌우 모두를 포용해야 한다. 편 가르기를 하면 적이 많아지는데 어떻게 정권을 잡을 수 있겠는가.”

-관료 출신 정치인 가운데 이용섭 정책위의장 같은 이는 반값 등록금, 무상복지, 한·미 FTA에 대해 공세적인 주장을 펼친다. 어떻게 생각하나.
“그 양반한테 어떤 해를 끼칠지 모르는데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나. 개인적으로 할 말이 많지만 말을 아끼고 싶다. 민주당 분위기가 하도 살벌해서….”

-한·미 FTA나 제주 해군기지 문제에 대해 야당 지도자들이 말 바꾸기를 하는데.
“미국에서 정치인의 가장 큰 결점은 거짓말 혹은 말 바꾸기다. 고등학교, 대학교 때 했던 거짓말까지 문제가 된다. 말로 하는 게 정치고 거기서 신뢰가 생기는 것 아니겠는가. 정치인이 발언을 할 땐 5~10년 뒤까지 내다보고 그걸 책임지겠다는 자세로 말해야 한다. 즉흥적으로, 당장 인기를 얻으려 해선 안 된다.”

-동아시아 경제공동체를 거론했는데 향후 한·중·일 FTA는 어떤 수순으로 추진하는 게 좋은가.
“우리가 중심이 돼 3개국 FTA를 추진할 수 있다고 본다. 일본은 농업 부문을, 중국은 공산품 부문을 가장 두려워한다. 우리는 두 분야 모두 중간이다. 농업 분야만 본다면 한·일 FTA를 먼저 추진하는 게 얻을 게 더 많다. 그런 점에서 새만금 사업은 주목할 만하다. 중·일과 가까운 지역에 싼 값에 활용할 1억 평 규모의 국유지가 있다. 새만금에 물류중심기지를 만들면 경제허브 역할을 할 수 있다.”

-재벌 개혁은 어떻게 해야 바람직한가.
“두 가지다. 첫째, 재벌이 중소기업이나 영세 자영업자의 영역을 침범해선 안 된다. 둘째, 노동시장을 왜곡해선 안 된다. 같은 공장에서 같은 밥 먹는데 사내 하청이어서 임금 격차가 크다면 그건 정당화되기 어렵다. 요즘 ‘고용 없는 성장’ 시대라고 말하는데 맞지 않는 얘기다. 사실은 고용이 늘어났지만 대기업 소속이 아닌 변칙적인 비정규직 고용 형태로 늘어난 거다. 재벌 기업이 노동시장의 이중 구조를 만들어선 안 된다. 재벌 개혁을 추진할 때 출자총액 제한, 순환출자 금지 같은 게 아니라 노동시장의 불합리한 관행을 개혁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

-정치시장과 경제시장의 논리가 많이 다른 것 같다. 한국 정치는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을 줄이고 분권형으로 가야 한다. 대통령 선거에서 이겨야 하는 것, 거기에 줄을 서는 것, 이게 한국 정당정치의 기본원리가 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여당이 돼도 어떤 대선 주자에게 줄을 서느냐에 따라 정치인생이 달라진다. 이건 잘못된 것이다. MB정부의 경우 자기 편이 아니면 공직 진출 기회를 완전히 박탈했다. 미운 놈은 검찰·국세청에서 얼마든지 손을 봐줄 수 있다. 이래선 선진국이 될 수 없다. 그걸 막으려면 대통령에겐 외교·안보·국방 혹은 교육까지 관장하게 하고, 국무총리에겐 이념적 차이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경제·환경·노동 같은 분야를 맡겨야 한다. 국무총리는 국회에서 뽑도록 하자는 게 내 주장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이해찬 총리를 임명하며 ‘책임총리제’를 표방하지 않았나.
“그건 두 사람의 개인적 신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걸 헌법으로 제도화하자는 얘기다.”

이양수·하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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