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술 스튜디오 낸 배우 오현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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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가장 정확한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을 만나려면 극장에 가라'는 말이 있다.

이는 정확한 언어구사능력이 배우의 ABC라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정은 어떤가.

정확하게 말하기는 고사하고, 발음이 새는 사람도 조금만 예쁘고 재주만 있어 보이면 배우를 지망하는 것이 현실이다.

'TV손자병법'의 만년과장 이장수로 더 유명해진 연극배우 오현경씨(64)는 이런 현실이 영 못마땅하다.

"이미 배우들의 억양이나 발음이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고, 아무리 말이 변한다고는 해도 표준말을 잃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우리나라 국어교육은 입시위주의 쓰기교육에 초점이 맞춰져 정작 중요한 말하기 교육은 학교교과과정에서 제외됐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외국인에 비해 조리있게 말을 잘하지 못하는것은 순전히 말하기를 제대로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관객들에게 이야기를 전하는 배우라면 화술은 당연히 갖춰야할 기본 소양입니다"

TV에선 익살과 재치, 무대에선 날카로운 풍자로 40년의 연기생활에 몰두해온 오씨는 최근 작은 꿈 하나를 이뤘다.

명륜동 혜화여고 앞에 후배들과 함께 연기연습을 할 스튜디오 '松栢堂'을 연 것. "30평짜리 작은 공간이지만 내가 경험한 무대얘기도 해주고, 후배들의 서툰 연기와 잘못된 발음도 잡아주며 연기에 파묻혀 살 수 있는 공간입니다"

그는 이곳에서 극화술을 비롯한 연기전반에 관한 내용을 후배들에게 전수하고 있다. 강습료는 없다. 대신 연기에 대한 열정과 재능을 갖춘 사람이어야 한다.

과거 대학강단에서 화술을 지도하기도 한 오씨는 "교수와 학생의 관계로 만나 제한된 시간안에 일정한 내용을 기계적으로 주고받는 형식 보다는 가능성 있는 젊은이들을 발굴해, 갖고 있는 모든 것을 전해주는 것이 더 보람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한다.

현재 5명의 배우 지망생들이 오씨의 지도를 받고 있다. 평소 그가 후배들에게 강조하는 것은 대사를 무조건 외우기 보다는 극의 전후 상황을 이해하고, 여기에 맞는 톤으로 대사를 맞추라는 것.

대사 외우기에 급급한 앵무새가 아니라, 극을 이끌어나갈 수 있는 배우로서의 자존심 지키라는 것이다.

1994년 식도암으로 죽음의 문턱에 이르기도 했던 오씨는 최근에도 연극무대에 올라 변함없는 연기열정을 보여주고 있다.

"서울고등학교 연극반 시절부터 지금까지 하고 싶은 연극 실컷 하고 있으니, 이제 뒤를 이어 연극무대에 설 후배들에게 내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을 전해줘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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