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미국·유럽 대형 은행들

중앙일보

입력

미국과 유럽의 대형 은행들이 부실 채권 증가와 텔레콤 업체들에 대한 과다한 대출로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최신호에서 보도했다.

이코노미스트지는 은행 감독기관인 미 재무부 산하 통화감독청(OCC)관계자의 말을 인용, 이같이 전하고 "경기가 위축되고 텔레콤 관련주들이 계속 약세를 보일 경우 은행들의 신용 위기는 심화할 것" 이라고 덧붙였다.

미국 은행들은 재무구조가 비교적 튼튼하고 리스크 관리도 뛰어난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그러나 지난해 금융기관간 타업종 진출을 금지한 글래스-스티걸 법안이 폐지되는 등 일련의 규제완화 조치로 일반은행과 투자은행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고객 확보 차원에서 대출 규모를 크게 늘렸다.

그러나 신용도가 탄탄한 회사들이 자금조달 창구를 증권시장 쪽으로 대거 전환하면서 은행들의 대출 포트폴리오가 신용도가 낮은 기업들 위주로 채워지는 바람에 부실 채권 규모가 덩달아 증가했다.

미국내 비금융 기업들의 장부상 부채 비율은 1997년 27%에서 올해에는 83%로 높아졌다.

최근 신디케이티드 론 시장에서는 다른 곳에서 자금을 빌려다 기업들에게 대출해주는 '레버리지 론' 의 규모가 급증, 이같은 위기론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신규 레버리지 론의 비중은 97년 7%에서 올해 1분기에는 36%로 늘어났다.

이달초 OCC.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신디케이티드 론의 부실 규모가 1천억달러에 이르며, 이중 악성 채권은 전년보다 70% 증가한 6백30억달러를 기록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유럽 은행들의 경우 텔레콤 회사들에 대한 대출 비율이 지나치게 높은 것으로 지적됐다.

영국의 바클레이즈 은행은 텔레콤 부문에만 2백억달러를 대출했으며, 그중 대부분이 보다폰.브리티시 텔레콤.오렌지 등 3개사에 집중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국의 압력으로 유럽 은행들의 통신부문 대출 비율은 다소 낮아지고는 있지만 텔레콤 기업들이 쓰러질 경우 은행들도 연쇄적으로 타격을 받는 만큼 안심할 상황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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