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위크]인도의 인터넷 전사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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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첨단기술 업계에서는 일찍 뛰어든 사람들이 재미를 보고 있다. 인터넷 관련 사업가 산자이 힌두자와 마니시 모디는 11개월 전만 해도 서로 모르는 사이였다. 두 사람 다 웹서비스 틈새시장에서 3년째 작은 회사를 경영해온 30대의 최고경영자(CEO)
였다. 모디의 넷어크로스社는 마이크로소프트·IBM 운영체제에 관한 전문지식과 미국·영국의 고객을 확보하고 있었다. 힌두자의 OLS社도 그와 유사한 벤처 기업이었다.

인도의 기업 고객을 주로 상대했다는 점과 넷어크로스와는 다른 컴퓨터 기술을 바탕으로 했다는 점만 달랐다. 두 회사는 또 e벤처스라는 같은 벤처투자 그룹(세계적 언론 재벌 루퍼트 머독의 뉴스코프와 일본의 대기업 소프트뱅크社가 투자한 벤처자본 회사·자금 규모 1억 달러)
의 지원을 받고 있었다. e벤처스측은 이들 두 창업회사가 ‘상호보완적’인 만큼 서로 경쟁하기보다 힘을 합치면 더욱 막강한 회사가 될 것이라며 힌두자와 모디에게 합병을 권유했다.

두 사람은 처음에는 썩 내키지 않았지만 e벤처스의 제안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해 합병에 동의했다. 현명한 결정이었다. 합병으로 태어난 새 회사(모디의 회사명 ‘넷어크로스’를 그대로 사용한다)
는 e벤처스에서 투자한 4백만 달러의 자금을 바탕으로 급성장하고 있는 인도의 인터넷 B2B 업계에서 주요 기업이 됐다.

합병 후 수입이 5백50% 증가했고, 직원도 1백 명에서 3백50명으로 늘었으며, 뉴욕·샌프란시스코·런던에 사무실도 신설했다. 1년 안에 나스닥에도 상장될 것이다. e벤처스는 투자의 대가로 현재 그 회사 주식의 20%를 소유하고 있다. 그러나 모디와 힌두자는 자금·거래처·경영 노하우 등 e벤처스에서 제공받은 것들에 비추어볼 때 합당한 대가라고 말한다.

1990년대의 테크놀로지 붐은 이제 좀 시들해졌지만 인도의 첨단기술 산업 종사자들은 희망에 부풀어 있다. 그럴 만도 하다. 실리콘 밸리와 미국 신경제의 경이로운 성장에 윤활유 역할을 한 벤처투자가들이 이제 인도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좋은 조짐이다. 인도에는 오래 전부터 우수한 프로그래머와 엔지니어들이 남아돌았다.

과거에는 그들 대다수가 주로 미국의 대형 소프트웨어 회사에 들어가 프로그래밍 부문에서 뛰어난 실력을 발휘했다. 자신의 회사를 설립해 제2의 빌 게이츠가 되고자 하는 좀더 야심찬 사람들은 미국으로 건너가거나 창업의 꿈을 접는 수밖에 없었다. 인도에서는 창업 자금을 충분히 지원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1998년 인도의 벤처 투자 총액은 1억5천만 달러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제 사정이 완전히 달라졌다. 인도의 첨단산업 종사자들이 미국에서 성공을 거둔 것이 큰 이유였다. 인도 벤처투자협회의 비슈누 바르슈니 회장은 올해 인도의 신규 기술창업에 투자되는 돈이 적어도 10억 달러(대부분 미국으로부터의 투자)
에 이를 것이라고 말했다. 또 미국의 세계적 컨설팅 회사 매킨지와 인도의 소프트웨어 협회 나스콤의 공동연구에 따르면 오는 2008년까지 그 액수는 1백억 달러로 뛸 전망이다.

그러나 그것도 지난해 신규 정보기술(IT)
회사들에 투자된 벤처자본이 2백40억 달러에 이르는 미국과 비교하면 보잘 것 없는 액수다. 그러나 투자가들은 물가가 싼 방갈로르(인도 첨단기술 산업의 중심지)
에서 같은 액수로 훨씬 높은 효과를 본다.

더 중요한 것은 투자 지출의 급증은 세계에서 두번째로 큰 나라 인도의 경제에 청신호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처럼 인도에서도 IT 산업은 경제성장의 견인차로 떠오르고 있다. 새로운 투자 자금의 흐름은 새 회사의 설립으로 이어지고, 그것은 또 일자리와 富를 창출한다. e벤처스의 CEO 니라지 마르가바는 “인도는 현재 1980년대의 미국이나 90년대 초의 이스라엘과 같은 상황이다. IT는 인도에서는 석유나 마찬가지다. 곳곳에서 활기찬 에너지가 느껴진다”고 말했다.

인도의 기업 문화는 보수적이지만 벤처자본의 유입으로 위험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도 달라졌다. 힌두자나 모디처럼 교육 수준이 높은 젊은이들이 과거 어느 때보다 기꺼이 모험에 뛰어들고 있다. 18개월 동안 12개 신규 회사에 자금을 지원한 월든 인터내셔널 그룹(뭄바이 소재·자금 규모 2천3백만 달러)
의 수디르 세티 전무이사는 “창업의 봇물이 터졌다”고 말했다. 그는 1년 전 하루 5건에 불과하던 사업 제의가 이제 10건으로 늘었다고 말했다.

기술주의 가격은 최근 몇 달 동안 세계적으로 폭락했지만 분석가들과 투자가들은 인도의 IT 산업 전망을 낙관한다. 상장 기업의 시장가치로 볼 때 인도의 기술산업 부문은 10년 사이에 1억 달러에서 1천억 달러 규모로 성장했다. 또 지난해 인도의 산업소득 총액은 40% 성장했다(개발도상국 평균치의 倍)
.

미국 5백대 기업 가운데 약 2백 개가 인도 회사로부터 소프트웨어 서비스를 구입한다. 인포시스 테크놀로지스·사트얌 인포웨이 등 인도 회사들은 나스닥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런 성공 사례는 사람들에게 창업의 꿈을 추구할 용기를 준다. 올해 인도의 IT 부문(응용 소프트웨어·전기통신·데이터 저장 등)
창업은 모두 7천 건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1999년에 비해 배로 성장한 것으로 미국에 이어 세계 두번째다. 새 벤처 기업이 망해도 기술부문 일자리는 넘쳐난다.

그러면 벤처투자가들이 이제서야 인도에 눈을 돌린 이유는 무엇일까. 인도의 IT 산업은 굳건한 성장에도 불구하고 많은 세금과 규제에 묶여 있었다. 최근까지도 국내 벤처투자 기금들은 자본이득에 대해 2중으로 세금을 냈고, 외국 투자가들이 인도의 첨단기술 회사에 투자하거나 그런 회사들을 매각하기를 원할 경우에는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했다. 그러나 인도 정부는 이제 더 이상 관여하지 않으려는 것 같다. 현재 대다수 벤처투자가들이 세금을 전혀 물지 않고 있으며 거래 당사자들도 대체로 정부의 간섭 없이 활동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인도의 기업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경쟁이 심한 첨단기술 시장인 미국에서 재능을 발휘함으로써 투자가들의 주목을 받았다. 지난 3년 동안 인도인들이 소유 또는 경영하는 회사들은 실리콘 밸리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들 회사의 시가총액은 모두 합쳐 1천5백억 달러에 이른다. K.B. 찬드라세카르가 설립한 엑소더스社는 미국 최대의 웹호스팅 회사다. 또 프라딥 신두의 주니퍼 네트워크스社는 시스코 시스템스를 따라잡고 있다.

수익을 창업 회사에 재투자하는 신두와 찬드라세카르는 미국에서는 이미 ‘앤젤 투자???통한다. 이제 그들은 고국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새로운 시장에서 큰 수익을 기대하는 미국인 투자가들과 여타 인도인 사업가들도 그들의 뒤를 따르고 있다. 뉴델리에 있는 인피니티 벤처스社(자금 규모 3천5백만 달러)
의 사우라브 스리바스타바 회장은 “인도의 벤처투자 사업은 이제 막 시작이라 너도나도 뛰어들고 있지만 곧 옥석이 가려질 것”이라고 말했다. 뉴델리에 있는 인피니티社는 캔왈 레키(네트워킹 하드웨어 회사인 엑셀란의 설립자)
와 B.V. 자가디시(엑소더스의 동업자)
등 실리콘 밸리의 내로라하는 인도인 사업가들로부터 자금을 공급받고 있다.

인도의 성공은 그 풍부한 인적 자원 덕분이다. 인도는 매년 11만5천 명의 공학도를 배출하고 있고 그중 상당수는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컴퓨터 프로그래밍 전문가다. 미국 정부가 교육수준이 높은 이민자를 위한 임시 입국 비자에 상한선을 둠에 따라 실리콘 밸리 취업이 어려워지자 그들은 점차 국내 창업 쪽을 택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에게 창업자금이 쇄도하고 있다. 방갈로르에서 사는 미국인 벤처투자가 노먼 프로티(61)
도 수많은 열성 투자가중 한 사람이다. 그는 “나는 값싼 노동력을 원하면 중국이 좋지만 값싸고 우수한 인재를 찾는다면 인도가 적격이라고 권한다”고 말했다.

인터넷 창업이 여전히 인기를 모으고 있는 가운데 인도의 10억 인구중 대다수를 잠재 고객으로 하는 지방어 포털 사이트들이 특히 각광받고 있다. 고객 확보에 주력하고 있는 중소 정보통신업체 드리슈티社는 인도의 8억 농민을 인터넷 이용자로 끌어들이는 것이 목표다. 창업자 사티안 미슈라는 컴퓨터가 설치된 출장소와 관공서를 연결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구나바드 지방에 있는 한 초라한 출장소에서 신발도 신지 않은 농부 굴랍 싱이 드리슈티社의 사업 구상을 직접 시현해 봤다.

그가 소들이 죽어가는데도 정부측 수의사가 손을 쓰고 있지 않는다고 구술(口述)
하자 대리인이 그것을 컴퓨터에 입력했다. 힌디어로 된 그 민원은 드리슈티社 사무실의 인트라넷 회선을 통해 관계당국으로 전달됐다. 그러자 몇 시간만에 현지 수의사가 소들을 검진하러 왔다. 이 회사는 전자 메시지 1건에 겨우 2센트를 받는다.

그러나 이 서비스가 컴퓨터가 없는 인도인 대다수에게 큰 호응을 얻을 경우 엄청난 사업이 될 수도 있다. 지금까지 20개의 출장소를 설치한 미슈라는 전국의 산간 오지에까지 출장소를 확장하는 데 필요한 자금 문제를 놓고 인피니티 벤처스社와 협상중이다.

인도 및 세계 시장의 규모를 감안할 때 그 성장 잠재력은 엄청나다. 월든 인터내셔널 그룹의 라지 콘두르(29)
는 “우리는 오랫동안 지속될 거대한 물결의 첨단에 서 있다”고 말했다. 그는 1996년 美 하버드大 재학시절 인도에 기반을 둔 벤처 캐피털 사업을 구상한 이래 죽 기회를 노려왔다.

결국 지난해 4월 그는 미국 모건 스탠리社에 사직서를 내고 뭄바이에 크리살리스 캐피털社를 공동 창업했다. 크리살리스社는 5천만 달러의 자금 조성을 목표로 했지만 인도의 벤처 캐피털 열풍을 타고 6천5백만 달러나 모을 수 있었다.

거기에는 마이크로소프트社와 싱가포르 경제개발청의 투자금도 포함돼 있다. 당초 계획은 3년에 걸쳐 투자하는 것이었지만 이미 자금의 60%가 15개사로 들어갔고 벌써 2차 기금 조성을 준비중이다. 콘두르는 “우리는 기회 포착에 성공했다”고 말했다. 대세를 따르라. 인도의 비옥한 IT 산업의 영토에 지금 씨앗뿌리기가 한창인 것이다. (lan MacKinnon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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