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홍수의 싱가포르뷰] 프랑스보다 부도위험 낮은 동남아 …‘제2브릭스’ 성장 스토리 쓸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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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이달 들어 대부분의 동남아시아 국가의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동결하거나 낮췄다. 물가상승률에 대한 부담이 상당한데도 그렇게 했다. 미국과 유럽의 경기 침체에도 굳건한 성장세를 유지해 왔던 동남아 국가가 최근 중국과 인도의 경기가 둔화하고 있다는 소식에 반응한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중국으로 많은 천연자원을 수출하고 있는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의 경우 중국의 경기 둔화가 끼치는 영향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경제성장률 목표치 하향 소식이 나왔던 지난주 필리핀은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했다. 지난 1월 금리를 낮춰 시장을 놀라게 했던 인도네시아는 금리를 동결했다. 12일 베트남은 1%포인트 기준금리를 낮췄다.

 동남아 지역의 이러한 전반적인 경기 둔화 우려 속에서도 최근 싱가포르 펀드매니저 사이에서 화제가 됐던 뉴스는 말레이시아 금융지주회사인 CIMB그룹이 영국 국영은행인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의 아시아 투자은행(IB) 사업을 인수한다는 소식이었다. CIMB그룹은 한국에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자산 규모가 약 100조원으로 말레이시아에서는 두 번째로 큰 은행 금융지주회사다.

 2008년 월가의 상징 중 하나였던 리먼브러더스의 아시아 사업부문이 노무라(野村)증권에 팔린 것은 지금도 많은 미국 금융인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 사건이었다. 실제로 인수 당시 3000여 명이던 리먼 인력의 상당수가 문화적 차이 등을 이유로 회사를 떠났다. 그런데 이번에는 노무라보다 훨씬 더 작은 규모의 말레이시아 은행인 CIMB가 영국 최대 금융회사 중의 하나인 RBS의 아시아 사업을 인수하기로 한 것이다. 시장에서 CIMB가 노무라의 전철을 밟지 않을 수 있을지에 대한 관심이 높다. 결과는 두고 봐야겠지만 노무라의 리먼 인수보다는 성공 가능성이 크다는 견해가 꽤 많다.

 이번 CIMB의 RBS 아시아 사업 인수가 시사하듯 동남아 국가는 세계 경제위기에도 높은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세계 금융위기 이전 브릭스(BRICs) 국가에 가려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했던 인도네시아나 말레이시아 등의 동남아 국가가 최근 매력적인 투자 대안으로 부상한 것이다. 특히 한국·중국·일본이 제한적인 협력관계를 유지하는 동북아시아와 달리, 동남아 국가는 단일 경제블록으로서의 시너지 효과를 누리고 있다. 풍부한 천연자원과 많은 인구는 수출과 내수가 균형 있게 발전할 수 있는 최적의 배경을 제공한다.

장기적으로 이들 국가의 성장 스토리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월에는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14년 만에 최초로 무디스가 인도네시아의 신용등급을 투자등급인 Baa3로 높이기도 했다.

 지금은 인도네시아의 국가부도 위험 수준을 나타내는 신용부도스와프(CDS) 금리가 프랑스보다 낮은 시대다. 말레이시아의 CDS 금리는 일본과 같다. 몇 년 후에는 한국 금융회사의 민영화에 동남아 금융회사가 참여하려 한다는 소식을 듣게 될지 모를 일이다.

 지난 수년간 세계 경제 패러다임이 급변하는 가운데 동남아 국가는 자신들의 위상을 높여왔다. 성장 스토리는 여전하다. 최근의 단기적인 경기 둔화 우려에도 동남아를 여전히 매력적인 투자 대상으로 지켜봐야 할 이유다.

한홍수 KIARA 주식부문 최고투자책임자(C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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