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트서 노숙, 밤엔 술판…서울광장 무슨 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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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지난 1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대학생 시위대들이 바닥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다. 이들은 지난해 12월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앞에서 벌여온 점거 시위를 이날 서울광장으로 옮겼다.

11일 새벽 4시 서울 시청앞 광장. 2인용 텐트 10여 개와 천막 2개가 설치돼 있었다. ‘문제는 자본주의다’, ‘한·미 FTA 반대’라고 적힌 현수막 앞에서 얼굴이 불그스름해진 30대 남성 4명이 이야기를 나눴다. 천막 뒤에는 소주 두 박스와 맥주 두 박스가 널려 있었다. 주변을 순찰하던 경찰은 “천막 안에서 술자리가 이어지면서 사람들이 비틀거리며 다니거나 고성을 지른다”며 “담배를 피우는 시위대도 목격됐다”고 전했다. 서울광장은 지난해 3월부터 금연구역으로 지정됐다. 남성 20여 명은 비닐과 스티로폼, 침낭을 이용해 서울시청 공사장 펜스 앞에서 잠을 청했다.

11일 오전 서울광장에 세워진 텐트 주변에 놓여진 맥주 박스. [김민상 기자]

 서울광장에서 텐트를 이용한 시위는 서강대 총학생회 등 대학생 중심으로 지난 1일 시작한 점거(Occupy) 시위에서 시작됐다. 10일 쌍용차 정리해고 철회 집회 시위대도 텐트 시위에 합류했다. 텐트 노점(노숙·점거) 시위가 2004년 서울광장이 조성된 뒤 처음으로 나타났다. 지난해까지 서울시청은 ‘도시 미관을 해친다’며 서울광장에서의 텐트 노점 시위를 허가하지 않았다. 그러나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해 10월 당선된 뒤 “서울광장은 앞으로 시민의 것이다. 누구의 허가에 의해서가 아닌 누구나 나와, 무슨 말이라도 할 수 있는, 마음껏 주장하는 곳”이라고 밝히면서 사정이 바뀌었다. 이번에도 대학생 시위대가 여의도 한국거래소 앞에 있던 텐트를 서울광장으로 옮기겠다고 하자 서울시가 별말 없이 허가했다.

 텐트 노점 시위는 박 시장의 서울광장 정책의 ‘시금석’이 될 전망이다. 다음 달 11일 총선 직전까지 크고 작은 텐트 노점 시위가 서울광장에서 예정됐다. 텐트 노점 시위대는 30일 텐트 330개를 세우고 ‘청년 실업 해결 촉구’를 위한 대규모 집회를 열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서울시 입장에선 마냥 텐트 노점 시위를 반길 수만도 없다. 텐트 노점 시위 때문에 26~27일 핵안보 정상회의(G50)의 의전 루트도 바뀌게 생겼다. 경찰 관계자는 “서울광장 앞 플라자호텔과 롯데호텔에만 각국 정상 5명 이상이 머물 예정”이라며 “청와대에서 서울광장, 남산 3호터널로 이어지는 의전 루트를 바꿀 계획”이라고 말했다. 주변 상인들도 울상이다. 서울광장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마모(55)씨는 “시위 때문에 외국인 관광객이 비켜가 매출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인 관광객 구라다 미요코(53)는 “일본에서는 텐트에서 자는 노숙 시위가 없다”고 말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텐트 노점 시위 규모가 커질 경우 제재할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서강대 고명우 총학생회장은 “텐트 시위에 참여한 다른 단체가 술을 마셨다”며 “내부 규칙상 시위 중 음주는 금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류정화 기자

◆점거(Occupy) 시위=지난해 9월 뉴욕 월가 주코티 공원에 청년 실직자 수십 명이 모여 시작한 시위. 소득 불평등 문제를 주로 지적한 이 시위는 현재 세계 82개국 도시로 번졌다. 한국에서도 지난해 12월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앞을 시작으로 곳곳에서 점거시위를 벌여 왔다. 무당파성을 앞세우는 미국에 비해 한국은 정치색이 짙어 변질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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