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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구재 吳도사의 쉼터 식사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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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호 27면

전북과 경남의 도 경계인 등구재에서 한 남자를 만났다. 덥수룩한 구레나룻, 투박한 손, 맑은 눈. 자칭 오도사(吳道士)다. 지리산 둘레길 옆에 세워둔 봉고차 안에서 3년째 숙식하면서 자연 속에서의 삶을 즐긴다. 한마디로 유유자적한 즐거움이다. 그의 휴식공간인 ‘철학카페’에서 대화를 나누면서 행복이란 ‘원하는 마음’을 버리는 데 있음을 알게 됐다. 이를 통해 그는 부족함을 초월해 편안함을 누리고 있었다.

삶과 믿음

“헛된 욕심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관념의 유희 속에 살고 있어요. 삶을 바꾸는 결심이 없으면 기존대로 그냥 살아갑니다. 아무것도 원하지 말자고 결심한 순간 행복해집니다.”

그가 이렇게 말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그는 정신세계에 관심이 많았던 헬렌 니어링과 스콧 니어링 부부의 공저 조화로운 삶에 영향을 입은 바 크다. 뉴욕 생활을 접고 버몬트라는 숲에 들어가 살았던 이들 부부처럼 그는 자연 속에서 살고 싶어했다. 몇 년 전부터 그런 생활을 위해 차근차근 준비했다고 한다. 2006년 사업 실패가 오히려 그의 이런 결심을 도와주었다. 그의 나이 47세 때였다. 대전 보문산 주차장 생활을 비롯해 일용직·보험회사·목수·벌초대행에 이어 등구재에 정착한 것은 어찌 보면 자연으로 돌아가기 위한 여정이었다.

“결정적인 계기가 없으면 현재 모습 그대로 살게 되어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숨쉴 여유가 있으면 이 생각을 잊어버립니다. 삶에 대한 강력한 자극이 주어지면 자연을 찾게 됩니다.” 그는 생활이 어려웠을 때 걱정이 두려움으로 변한 적도 많았다. 자기 마음대로 안 되니 괴로웠다. 그러다 굶어죽어도 좋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두려움이 사라지고 새 세상이 열리는 것을 체험했다.

“어떤 일이든 죽을 각오로 하지 않으면 뭔가 오지 않습니다. 사람이 궤도 수정을 하려면 이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저 역시 갈 데까지 가보니 자연에서 많은 것을 얻게 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이치를 알게 된 거지요.”

오묘한 자연과 더불어 친숙하게 살아가는 그는 간편한 삶을 추구하고 있다. 간소를 추구하는 그의 생활철학과 연결되는 듯하다. 자연 속에서 생활하면서 마음은 오히려 푸근해졌다고 한다.

“집·식사·옷차림을 간소화하면 번잡함에서 벗어납니다. 2평 넓이면 잠 자는 데 불편함이 없습니다. 알면서 버릴 줄 아는 사람이 고수입니다.”
그의 살림살이가 단출한 이유를 알 것 같다. 식사 역시 밥과 간단한 반찬으로 해결한다. 쌀 한 통과 된장·김치만 있어도 만족한다. 여름이면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천막 별장이 있는 것에 고마워한다. 변변한 집 하나 없지만 그는 날마다 자연을 만나고 발 아래 땅의 기운을 느끼고 사는 것이다.

“나를 내려놓을 때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도 50만원 넘는 돈이 생기면 다른 사람을 도와주고 싶어요. 나로부터 벗어나면 자유롭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이 맛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등구재를 내려오기에 앞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긴 나무 판자에 쓰인 글씨에 그의 간단한 이력이 적혀 있다. 1960년 대전 생, 고려대 동양철학 석사, 사주명리학, 건강상담을 비롯해 어깨 통증 완화라고 씌어 있다. 건강 상담을 하면서 자살을 결심한 사람을 여럿 구제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가 자주 들르는 등구령 쉼터에서 함께 식사를 하면서 그의 얼굴을 다시 한번 쳐다보았다. 그의 자연스러운 삶이 그대로 묻어 있었다.


육관응 원불교신문 편집국장. 글쓰기·사진을 통해 명상과 알아차림을 전하고 있다. 숲과 들을 접시에 담은 음식이야기, 자연 건강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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