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대선 … 모스크바 표정] 노년층선 “그래도 푸틴” … 젊은 층선 “뭔가 변화 필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2면

대선을 하루 앞둔 3일(현지시간) 이고리 올레고비치 쇼골레프 러시아 통신매스컴부 장관이 모스크바의 연방 상공회의소에 설치된 투표소 감시 영상 스크린 앞에서 인터넷을 통해 생중계되는 웹카메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당선이 확실시되는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는 지난해 12월 하원 선거 당시 집권 여당의 부정 선거 의혹으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잇따르자 선거 사상 처음으로 투표소에 웹카메라를 설치해 공정선거를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모스크바 로이터=뉴시스]

러시아 대선이 치러진 4일 모스크바의 수은주는 뚝 떨어졌다. 전날, 봄 같은 날씨에 거리를 채웠던 인파는 눈 깔린 거리에 나오지 않았다. 밤새 눈이 왔고 기온은 영하 10도쯤으로 내려갔다. 오전 10시 레닌스키 프로스펙트의 2080투표소로 나갔다. 투표소로 사람들이 드문드문 들어갔다. 바딤(54)은 “푸틴 후보를 지지한다”고 했다. “전에 경제위기를 겪지 않았나. 강력한 사람이 필요하다”며 “나머지 후보는 너무 약하다. 우리 세대는 다 푸틴을 지지한다”고 했다.

 길을 건너 지하철 레닌스키 프로스펙트 인근 학교에 있는 2077투표소를 30분 동안 지켜봤다. 입구에 투표 종료 직후 발표될 출구조사를 위해 서 있던 빅토리아(18·학생)는 “두 시간 동안 보니 전체적으론 젊은이보다 나이 많은 사람이 많았다. 그중 40여 명에게 물으니 푸틴이 다수였다. 그의 득표율이 50%까지는 갈 것 같은데 60%까지는 안 나올 것 같다”고 했다. ‘푸틴은 푸틴인데 압도적은 아니다’라는 빅토리아의 말은 변화를 희망하는 기류를 반영한다.

 젊은이들은 유행처럼 ‘반 푸틴’이었다. 이날 2077투표소에서 직장인 알렉세이(23)는 기업가 출신의 무소속 후보인 미하일 프로호로프를 지지했다. “변화가 필요하다. 푸틴은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날렸다. 프로호로프는 할 수 있어 보인다”고 했다. 역시 직장인 볼로댜(23)도 공산당 후보인 겐나디 주가노프에게 표를 줬다. “공약을 읽어보니 마음에 들었다”는 것이다. 택시기사 알렉산드르(50)는 “투표할 사람이 없다”고 했다. 그는 등록을 못한 그리고리 야블린스키 지지자였다.

 3일엔 그동안 반푸틴 집회가 열렸던 곳들을 둘러보았다. 크렘린 인근 마네즈 광장, 루뱐카 광장, 좀 떨어진 볼로트나야 공원, 푸시킨 공원을 돌았다. 다 한가했다. 선거와 관련된 모든 일은 금지됐다. 푸시킨 광장에서 18세 대학생 알리야(여)는 프로호로프를, IT전문대 2학년생인 청년 알렉(22)은 푸틴을, 드미트리(20)는 블라디미르 지리놉스키 자유민주당 당수를 지지한다고 했다. 프로호로프를 거론한 젊은이들은 대개 “뭔가 변화시켜야 하는데 다른 사람은 마음에 안 든다”고 했다. “푸틴은 못 믿겠다”고도 했다.

 푸틴을 지지하는 이유는 ‘강함에 대한 희망’ 하나로 모였다. 알렉은 “다른 후보는 약하다. 남자라면 강한 푸틴을 지지해야 한다”고 했다. 마네즈 공원에서 대학생 티무르(21)도 푸틴을 지지했다. 차를 태워준 루빈(55)은 푸틴을 지지하지만 이유가 “그 밖에 누가 있나. 중산층은 대개 푸틴을, 좀 더 잘사는 사람들은 프로호로프를 지지한다”고 했다. 대안 부재론이 대체적인 정세였다.

 이런 상황은 푸틴이 당선되더라도 앞길이 쉽지 않을 것임을 보여준다. 푸틴의 하락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한 정치 관측통은 “서방은 이를 푸틴의 몰락으로 보겠지만 실제론 진정한 러시아 민주주의의 시작으로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50%에 가까운 반대 세력이, 그것도 미래 세대인 젊은이들이 그 주축인 시절은 소련을 포함해 러시아 정치사에 처음이기 때문이다. 푸틴의 힘겨운 승리는 러시아가 크렘린이 지도하는 ‘관리 민주주의’를 벗어나 진정한 민주주의로 가는 싹을 보여주는 것일 수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