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 소방영화 '싸이렌'

중앙일보

입력

28일 개봉할 영화 〈싸이렌〉(감독 이주엽) 은 한국 최초의 본격 소방영화라는 점에서 많은 관심을 끌었던 작품이다.

소방영화의 대명사로 불리는 〈분노의 역류〉를 만든 할리우드 특수효과 전문가를 참여시키는 등 실감나는 영상을 만들겠다는 의욕이 대단했다.

40억원이란 만만찮은 제작비도 화제가 됐다.〈쉬리〉 〈비천무〉 〈공동경비구역 JSA〉 를 잇는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작품으로 일찍부터 주목을 받았다.

반면 기대가 컸던 탓인지 아쉬움도 큰 영화였다.가능성은 확인했지만 아직은 무르익지 않은 작품이랄까.

줄거리는 상업영화의 기본틀을 그대로 따왔다.거친 화마(火魔) 와 싸우는 두 소방대원의 우정과 갈등을 중심축으로 삼고, 한 소방대원을 사랑하는 여인의 얘기를 곁들여 일반인의 마음을 촉촉이 적실 장치를 마련했다.

하지만 미세한 부분에 대한 고려가 부족했다.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플롯이 있어야 관객의 마음이 움직이게 마련. 〈싸이렌〉 은 바로 이런 드라마적 특성을 충분히 살리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곳곳에서 의문부호가 남는다.

일단 주인공 준우(신현준) 의 성격이 불확실하다.어린 시절에 겪었던 마음의 상처로 화재현장에서 몸을 아끼지 않고 인명구조에 나서는 준우. 또 다른 주연인 합리적 스타일의 현(정준호) 과 이 상처를 싸고 심하게 대립하지만 영화 끝까지 그것이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다.

편집과정에서 이 부분이 잘린 것일까. 작품의 핵심이 시원하게 전달되지 않는다.때문에 주연들의 연기가 단절되고 때론 경직된 느낌도 준다.준우를 사랑하는 예린(장진영) 의 캐릭터도 너무 착하게만 그려져 극중의 갈등을 반감시킨다.

〈싸이렌〉 의 미흡한 구도는 형석(선우재덕) 에게서도 노출된다.화재로 아내와 딸을 잃은 형석이 소방대원에 대한 복수 차원에서 잇따라 방화하며 주요 등장인물을 비극으로 몰아가는 매개역할을 하지만 사랑과 우정을 그린 전체 분위기와 아귀가 척척 맞아들어가지 않는다.

제작진은 일종의 스릴러를 노린 것으로 보이나 영화는 긴장감보다 이완감을 유발한다.

소방영화의 '백미'여야 할 불길 장면도 어색하다.불을 다루는 솜씨가 군데군데 엉성해 보인다.

〈분노의 역류〉를 의식해 건물 전체를 파도처럼 뒤덮은 화염이나 시시각각 긴박하게 밀려드는 불길을 카메라에 담으려 한 노력은 긍정적으로 평가되나, 한국형 소방영화에 도전했다는 사실에서 의미를 찾는데 그쳐야 할 것 같다.

4억원을 들였다는 특수세트가 그럴듯 하지 못하고, 각양각색의 불길도 표현 의욕만 앞선 양상이다.

제작진은 많은 욕심을 부린 느낌이다.진한 휴먼 스토리를 전달하고 스펙터클한 장면도 구현한다는 두 마리 토끼를 노렸으나 결과적으론 두 가지 모두에서 목표치에 다가서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한국영화이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노고는 인정할 만하다.도전만이 역사를 만들지 않는가.

- Note -
CF감독 출신의 첫 작품인지 신속한 장면전환이 특색이다. 그러나 관객에게 생각할 틈을 주지 않고 거칠게 밀어부쳐 숨이 차다. 애써 〈영화다운 영화〉〈멋드러진 영화〉를 만들려는 부담감이 작품의 설득력을 희생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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