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부 리더십이 그립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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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호 31면

“울릉도 동남쪽, 뱃길 따라 이백 리, 외로운 섬 하나…”로 시작되는 대중가요 ‘독도는 우리 땅’의 주인공은 신라 장군 이사부다. 우리에겐 막연히 울릉도(우산국)를 정벌한 인물 정도로만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는 대장군, 정치인, 지식인으로서 신라가 삼국통일을 하고 천년왕국이 되는 기초를 닦은 이다.

그는 멀리 미래를 바라보고 비전을 만들고 실천한 지도자다, 신라 역사를 볼 때 울릉도 점령보다 더 빛나는 그의 업적은 화랑제도의 설립과 국사 편찬, 한강 유역의 정복이다. ‘한강 유역은 기름진 너른 들이 펼쳐져 있고, 중국과의 교역 통로이자 한반도의 심장부이니 이를 차지하는 자가 삼국을 통일한다’. 그는 이런 생각으로 이곳의 성들을 점령하였다. 그는 또 거칠부에게 국사를 편찬토록 해 신라인이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 과거의 지혜를 통해 오늘을 분석하고 미래를 전망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화랑제도 역시 단순히 진흥왕 37년에 세운 것으로 기록돼 있으나, 이사부가 화랑의 전신인 풍류도의 우두머리였고 지금으로 치면 국방장관과 총리를 겸했기에 실질적으로 그가 세웠을 것이다.

그는 사리사욕을 버리고 나라를 위해 양보하고 희생할 줄 아는 지도자였다. 진흥왕이 일곱 살에 즉위하자 그의 어머니 지소태후가 섭정하였다. 지소태후는 이사부와도 부부 사이였는데 둘 사이에서 숙명공주와 세종을 낳았다. 당시 이사부의 직책은 병부령과 이찬이었다. ‘단양적성비’를 보면 당시 이사부의 공식 직책은 현재 장관급인 이찬이다. 그런데 그가 이찬 자리에 있는 동안 42년간이나 상대등 자리가 비어있었다. 지소태후는 이사부를 ‘상상(上相)’이라 부른다. 당시 이사부는 이찬과 병부령을 겸하면서 실질적으로 상대등의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병권과 행정권을 모두 가진 이사부의 권력은 왕을 넘어섰고,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왕위를 찬탈할 수 있었다. 더구나 그는 왕위 계승권의 가장 윗자리에 있었다. 이름 자체가 “내물마립간을 잇는 지도자”란 뜻이다. 그는 소지마립간의 정치적 아들인 마복자였다. 지증왕이 쿠데타를 일으켜 소지마립간을 몰아내지 않았다면 왕위에 올랐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이 어린 조카인 진흥왕에게 충성을 바친다. 왕이란 자리보다 지소태후와의 사랑을 더 중히 여기고 나라를 더 소중하게 여긴 것이다.

그는 장보고보다 훨씬 앞서서 해양대국 신라를 건설한 해상왕이었다. 그가 울릉도를 점령한 이후 그토록 빈번했던 왜구 침략이 60년 동안 단 한 차례도 없었다. 기록이 누락됐을 수도 있지만, 울릉도 점령 전후에 왜구 침략이 많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실제로도 그랬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동해는 고구려와 왜가 교역하던 통로였다. 울릉도 점령은 바다 멀리 떨어진 섬나라 정복만이 아니라 동해의 제해권을 장악하기 위해서였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이사부를 실직주 군주에 임명하자마자 “겨울 11월에 또한 배와 노의 이로움을 제도화하였다(又制舟楫之利)”라는 기록이 나온다. 이는 진평왕 5년에 선부서(船府署)를 설치하기 이전에 선박을 다루어 그 이로움을 취하는 부서를 제도화했음을 뜻한다.

그는 대장군이었지만 싸우지 않고도 승리를 획득한 지략가였다. 울릉도 점령 때 나무사자로 위협해 현지인들을 굴복시켰고 다른 전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삼국사기 열전 ‘이사부전’에 “거도(居道)의 지략을 모방하여 마희(馬戱)로써 가야국을 속여서 빼앗았다”라는 기록이 나온다. 말 등에 타고 유희를 하는 지략을 구사해 가야의 성을 점령한 것이다. 삼국사기 진흥왕 11년(550년)조에서는 고구려의 도살성과 백제의 금현성을 공격했는데, 두 나라 군사가 지친 틈을 이용했다고 한다. 울릉도, 한강 유역, 가야 등 광대한 영토를 점령했지만, 그의 전투 기록에는 희생자가 나타나지 않는다. 기록 누락의 탓도 있겠지만 그의 전쟁 스타일을 말해준다.

4·11 총선에 이어 12월 대선을 앞두고 있다. 나라와 백성의 밝은 미래를 위하여 비전을 제시하고 실천하는 자, 사리사욕을 버리고 국민을 진정으로 섬기고 희생할 줄 아는 자, 동아시아의 질서를 내다보고 대처하는 자, 싸우더라도 적을 해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자, 바로 그런 리더가 선출되기를 이사부는 하늘에서 소망할 것이다. 선거 뒤에, 그가 그립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도흠 『신라인의 마음으로 삼국유사를 읽는다』 『화쟁기호학-이론과 실제』 등의 저서가 있으며 소설 『이사부』를 썼다. 한국학연구소 소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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