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경선 열풍에 선거혁명 중화상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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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호 04면

광주비상시국회의 참가자들이 1일 광주 동구청 앞에서 농성에 들어갔다. 이들은 민주당 모바일 경선 선거인단 대리등록 의혹 등을 비판했다. [광주=뉴시스]

“중앙당에서 모바일 투표 등 국민경선제를 위한 홍보가 전무한 것이 화를 자초했다. 예비후보가 일일이 시민을 만나 복잡한 선거인단 등록 과정을 어떻게 다 설명하나. 조직과 돈을 동원하려는 유혹을 느낀 후보들이 많으니 광주 동구 같은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경기도 동두천·양주 지역구 이교정 민주통합당 예비후보)

위기에 빠진 민주당 정치 실험

“제대로 민의를 반영하려면 노년층도 참여시켜야 할 텐데, 노인 상당수의 휴대전화 명의가 자녀 명의로 돼 있어 제대로 대응을 못한다. 젊은 사람들이 너무 과잉 대표되는 현상도 우려된다.” (경남 김해을 곽진업 민주통합당 예비후보)

“모바일 경선의 긍정적 취지는 적극 동의하지만 동네가 뻔한 지역구 선거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기존 조직을 가진 후보자들이 자연스레 조직선거, 금품선거의 유혹을 받는다.” (광주광역시의 한 시민단체 관계자)

국내 처음으로 총선 후보 결정 과정에 모바일 경선을 도입한 민주통합당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선거 혁명을 내세우며 등장한 모바일 투표가 선거인단 모집 과정에서의 문제로 역풍을 맞고 있어서다. 선거인단 등록이 100만 명을 넘으면서 흥행에 성공했다는 자평도 있지만, 이 과정에서 드러난 한계도 적지 않다. 뜨거운 바람을 일으킨 모바일 경선이 제대로 관리를 못해 새누리당으로부터는 민주주의 원칙을 훼손했다는 공격까지 받고 있다.

민주통합당은 지난달 29일까지 103만4173명의 국민참여경선 선거인단을 모집했다. 1월 최고위원 선출 때의 80여만 명을 넘어서는 기록적 수치로 이들 중 상당수가 모바일 투표에 참여할 예정이다.

한명숙 대표가 2일 “국민경선과 모바일 투표는 국민의 손으로 국회의원 후보자를 선출하고 금권, 관권, 동원 선거를 해결할 수 있는 좋은 선출 방식”이라고 말하는 등 당 지도부는 높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하지만 같은 날 새누리당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은 모바일 선거인단 모집 부정 사건과 관련, “민주주의의 근본을 파괴하는 굉장히 심각한 문제이자 선거의 기본인 비밀·직접선거를 부정하는 부정선거의 극치”라며 맹렬히 공격했다.

민주통합당 내부에서조차 회의적인 반응이 적지 않다. 선거인단 모집 과정에서 각종 불법이 있었던 것은 물론, 모바일 경선이 제대로 민의를 반영하지 못했다는 의견도 많다. 6일부터 시작되는 경선의 결과에도 불복하는 사례가 많을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새로운 민주주의 실험, 선거혁명 등으로 칭송받던 모바일 경선의 평가가 엇갈리게 된 발단은 지난달 26일 광주광역시에서 벌어진 자살 사건이다. 이날 오후 7시, 광주시 동구 계림1동 주민자치센터(동사무소) 5층에서 조모(66)씨가 투신해 병원으로 옮겼으나 숨졌다. 이날 선거관리위원회 직원들이 신고를 받고 센터 4층에 있던 도서관에 들이닥쳐 조씨의 소지품과 자료를 압수하자, 잠시 화장실에 다녀온다며 자리를 뜬 직후였다. 검찰 조사 결과 전직 동장인 조씨가 이 지역 유력 예비후보의 선거인단 모집에 관여해 온 정황이 드러났다. 민주당은 지난달 29일 광주 동구를 전략공천지역으로 정한 뒤, 2일에는 아예 후보를 내지 않기로 하는 등 대응에 나섰다.

하지만 사건이 벌어지자 민주당 내부에서도 모바일 경선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봇물처럼 쏟아졌다. 1일까지 민주통합당 부정선거감시센터에는 33건의 각종 신고가 접수됐다. 이 중 선거인단 대리 접수 등 모바일 경선과 직접 관련된 사안이 21건으로 3분의 2를 차지했다.

모바일 경선의 정식 명칭은 국민참여경선이다. 총선에 내보낼 후보를 중앙당에서 심사해 뽑는 게 아니라, 지역 시민들의 뜻을 물어 선출하겠다는 취지다. 시민들의 뜻을 물을 때 휴대전화를 이용한 모바일 투표에 가중치를 높인 게 특징이다. 이번 경선에서는 모바일 투표와 현장투표의 비중을 7대 3으로 반영한다. 모바일 경선이라 불리는 이유다. 민주통합당은 전국 지역구 246곳 중 최대 100곳에서 이런 방식으로 후보를 정할 방침이다. 첫 경선 모바일 투표는 6일 시작된다.

민주통합당이 총선 후보 결정에 모바일 경선을 도입하기로 한 것은 지난해 서울시장후보 경선 때의 흥행 성공이 계기가 됐다. 모바일 경선은 이후 민주통합당 출범 후 최고위원 선출 과정에서도 빛을 발했다.

국민경선의 높은 흥행성과 효과를 지켜본 민주통합당이 총선에도 이를 도입하기로 한 이유다. 새로운 형태의 직접민주주의라는 명분도 한몫했다. 민주통합당 총선기획단 진성준 국장은 “국민의 광범위한 참여를 보장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모바일 투표만큼 효과적인 것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행 과정의 허점은 적지 않다. 특히 경선이 예정된 지역의 예비후보들은 유불리를 가리지 않고 어려움을 호소한다.
가장 많은 비판은 선거인단 대리 모집·접수다. 광주 동구 외에도 지금까지 경기 광명, 경기 양주·동두천, 전북 김제·완주, 전남 장성·완도·나주 등에서 대리모집 의혹이 제기됐다. 이석형 전남 함평·영광·장성 예비후보는 지난달 21일 상대 후보 측이 고교생 등 미성년자를 고용해 선거인단 대리 등록을 해 왔다며 경찰에 고발했다. 선거인단 모집이 개시된 바로 이튿날이다. 이날 이후 각지에서 유사한 신고·적발 사례가 잇따랐다. 광주 동구의 투신 자살 사건도 그중 하나였다.

수법은 다양하다. 광주 북을에서는 한 예비후보 측이 병원 진료 환자들의 명단을 입수, 전화해 의사를 물은 뒤 선거인단에 대리 접수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전북 김제·완주 선거구에서는 특정 예비후보를 지지하는 지방의원들이 젊은 학생들과 함께 스마트폰을 잘 다루지 못하는 노년층을 찾아다니며 도움을 준 뒤 대리 접수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모바일 경선 제도가 휴대전화나 인터넷 등 정보기술(IT)에 익숙지 않은 노년층을 소외시킨다는 지적도 많다. 민의의 왜곡이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다.

이원재 KAIST 문화기술대학 교수는 “민주통합당이 제대로 준비를 못해 바람 앞 촛불이 되는 쇼를 한 상황이 됐다”고 평가했다. 이 교수는 “모바일 경선에 대한 법과 제도가 제대로 정해져 있지 않다 보니 그 허점을 파고 들어 예비후보들이 탈법 내지는 꼼수를 부리는 경우가 생기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동국대 박명호(정치외교학) 교수는 모바일 경선이 지나치게 이상적이었다고 평가했다. 시류에 너무 편승한 결과라는 얘기다. 박 교수는 “모바일 경선이 참여의 편의성과 국민의 관심을 증대시켰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라며 “전국 단위 선거라면 몰라도 지역 단위 선거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정당의 준비 태세에 문제가 많고 총선 등 지역 선거 적용에 한계가 보이지만, 모바일 투표 등 시민들의 의견을 직접 개진하는 통로가 넓어져야 한다는 점에는 많은 전문가들이 동의한다. 중앙대 장훈(정치외교학) 교수는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는 개방화된 통로를 마련하고 유권자 의식 개혁, 정당의 개방적 태도 등 과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면 좀 더 나은 경선제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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