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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 나쁜데 쓸개를 이식해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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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조윤제
서강대 교수·경제학

진단이 정확해야 바른 처방이 나온다. 선거가 다가오면 상대방과의 차별화를 위해 현 상황에 대한 왜곡된 진단들이 득세한다. 그 결과 집권을 하더라도 스스로 이러한 왜곡된 진단과 주장의 포로가 되어버리고 만다. 그것을 바른 자리로 돌리기까지는 적잖은 시간이 흘러야 하고, 그동안 취해진 정책은 이미 경제에 비용으로 계상되어 뒷날의 시장 왜곡과 국가 재정의 짐이 된다. 이런 현상이 되풀이되면 국력의 내리막길은 멀지 않다.

 지난 노무현 정부의 경제정책을 엄격히 들여다보면 대체로 외환위기 이후 도입된 시장개방, 자유화 등 보수적 정책기조를 유지한 것이었다. 미국의 프리덤 하우스도 이 기간 중 한국의 경제자유도가 6.91에서 7.34로 상승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수도권 부동산가격 폭등에 대응해 도입된 종부세가 좌파적 정책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나 어차피 재산세는 강화돼야 할 것이었고, 복지지출 또한 늘어나야 할 분야였다. 금융기관의 자율성과 중앙은행의 독립성 존중, 권력기관의 정치적 이용 절제, 자유무역협정(FTA)의 확대로 시장개방과 자율은 확대됐다.

 현 정권은 지난 대선과정에서 이러한 경제정책을 ‘반기업’ ‘좌파’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정치적 포장(political framing)’을 통해 국민의 지지를 얻고 집권에 성공했다. 그 결과 이 정부 초기에 취하게 된 정책은 지극히 친(親)기업적, 우파적 정책이 될 수밖에 없었다. 중간 혹은 다소 오른쪽을 왼쪽이라고 해놓다 보니 차별화된 정책은 지극히 오른쪽으로 편향된 정책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대북정책에서도 마찬가지다. 지난 정부에서 대북정책에 있어 원칙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면은 있었다. 북한체제와 같이 합리적 설명이 불가능하고 때로 국제적 범죄행위를 서슴지 않는 집단에 대한 포용정책이 가질 수밖에 없는 한계였다. 어쨌든 남북 간 교류협력은 확대되었고 북한의 대남 의존도와 실질적 개방도는 높아졌다. 이를 ‘좌파 퍼주기’ 정책으로만 규정하다 보니 이와 차별화된 정책은 지극히 냉전시대적 대북정책으로의 회귀밖에 없었다.

 지금 다시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이쪽이든 저쪽이든 어느 편이든 쏠림현상은 경계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는 초반의 친기업, 부자 감세 등 지나치게 오른쪽으로 경도된 경제정책으로부터 중반 이후 상당히 중도적 정책으로 선회했다. 오히려 진보정권이라 불리는 지난 두 정권보다 정부의 시장간섭은 더 강해졌다. 이를 ‘극보수’ ‘신자유주의’라고 정치적 포장을 하게 되면 향후 정책방향은 여야 할 것 없이 지나치게 진보적 방향으로 쏠릴 수밖에 없다. 오늘날 이명박 정부에 국민들이 실망하고 있는 것은 극보수적 경제정책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라기보다 전반적으로 더 깊이 퍼진 부패, 주변 측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사, 단기성과에 집착하고 진정성보다는 홍보기술에 의존하는 듯한 국정운영 스타일 때문이 아닌가 한다. 양극화의 심화, 빈곤층의 확대 등에 국민들의 실망과 좌절이 깊지만 이는 그동안 진행된 세계화와 세계금융위기로 초래된 구조적 요인이 더 크다.

 지금 우리 사회에 복지제도의 확대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과거 우리가 이에 대해 지나치게 소홀했기 때문이다. 빈곤층에 대한 사회적 지원과 재정의 소득재분배 기능이 확대돼야 한다. 또한 이를 위한 전반적 세제개편도 필요하다. 그러나 쏠림현상처럼 지나치게 이 방향으로 경도되는 정책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우리 사회는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 지금의 제도하에서도 복지지출이 빠르게 늘어나 재정을 위협하게 될 여건에 놓여 있다. 그리고 아직 1인당 소득이 세계 30위권 밖에 머물러 있는 우리에게 성장은 여전히 중요하다. 우리 경제는 더 많은 규제, 더 많은 정부개입보다 더 많은 경쟁, 더 많은 자율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에 존재하는 경쟁제한적 요인과 기득권에 의한 담합, 유착구조를 제거해 경쟁에 의한 생산성 향상과 창의력을 자극해줘야 날로 심화되는 중국 경제의 위협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공정경쟁이지 경쟁 자체를 제한하려 하는 것은 현명치 못하다.

 포스트를 붙이고 사람을 동원하며 광고에 쓰는 비용만 선거비용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적은 부분이다. 5년마다 되풀이되는 집권싸움에서 현상을 왜곡하는 정치적 포장을 함으로써 잘못된 정책방향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야말로 잦은 선거가 가져오는 더 큰 국민적 비용이다. 지금 무엇이 잘못되어 국민들이 새로움을 갈망하는지를 진솔하게 짚어야 한다. 간이 나쁜데 쓸개를 이식해 국가를 살린다? 그건 아니다.

조윤제 서강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