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한국통신 분할론 왜 나오나]

중앙일보

입력

도심의 공중전화 부스에는 안테나가 설치된 시티폰(CT-2)이 간간이 눈에 띈다.

시티폰 사업은 싹도 틔우지 못한 채 파산했지만 철거비용이 만만치 않아 고스란히 고물로 방치된 것이다. 한국통신이 이 사업에 날린 돈은 1천9백85억원.

감사원은 최근 "한통이 1994년 이후 투자실패와 인건비 초과지출로 1조4천억원 이상을 낭비했다" 는 감사결과를 내놓았다.

한통은 그러나 '주의' 조치를 내렸을 뿐 감봉 이상의 문책을 받은 한통 직원은 한 명도 없다.

한통측은 "사업을 유도한 정보통신부나 전임 사장들이 책임질 사안" 이라며 파문이 가라앉길 기다리고 있다.

4만7천명의 인력에다 연간 10조원의 매출을 올리는 국내 최대 통신업체인 한국통신이 비틀거리고 있다.

한통은 사업다각화에 열을 올리지만 손대는 사업마다 대부분 적자다.

케이블TV(3천1백30억원)사업▶국가지도통신(4백12억원)▶여의도 멀티미디어(2백12억원)▶전화비디오 사업(2백32억원)은 손실을 견디지 못해 문을 닫았다.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도 앞으로 2조원 이상 투자해야 2002년말께 손익분기점에 이를 전망이다.

뒤늦게 뛰어든 한통이 덩치와 자금력으로 밀어붙이면서 초고속 인터넷 선발업체인 하나로통신.드림라인 등은 동반부실의 후유증을 앓고 있다.

분당 신도시의 네티존은 출혈경쟁 끝에 부도가 나기도 했다.

한통의 한 임원은 "한통의 적(敵)은 내부에 있다" 고 털어놓았다. 뚜렷한 인사원칙과 투명한 경영평가 기준이 없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42년생인 S상무는 지난해 44년 이전에 출생한 국장급 이상이 무더기로 퇴직할 때 유일하게 살아남았으며 올해 상무로 승진했다.

기획조정실장인 C상무는 한통 내부에서 발탁인사의 상징. 그는 정권이 바뀐 97년부터 부장에서 3직급이나 뛰어올랐다.

부장에서 국장으로 승진하는 데 보통 10년이 걸리는 한통의 인사적체를 감안하면 파격적인 초고속 승진이다.

문제는 이들 대부분이 학연.지연으로 묶여 있다는 점. 한통은 특정지역 출신의 간부 비율이 가장 높은 공기업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한통은 이에 따라 정치적 상황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체질로 변해가고 있다. 그 뿌리는 깊어 지난 대선 때는 기조실장과 총무실장이 여당 후보캠프에 거액의 정치자금을 제공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옷을 벗었다.

한통 내부의 도덕적 해이는 고질화되고 있다. 지난해에는 1백85억원어치의 디지털 부품을 구입하면서 개당 5~5천7백달러에 수입한 제품을 11~7천7백달러로 납품받아 16억6천만원의 바가지를 썼다.

또 한국루슨트테크놀로지와 교환기 공급계약을 하면서 성능시험에서 두차례 불합격 처리되고 약속기한을 넘겼음에도 14차례에 걸쳐 4백10억원어치를 사들였다.

이밖에 한통프리텔 주식 나눠먹기, 임원 인건비 및 퇴직금 과다 지급, 연구개발비 회식 전용, 통신 가입비 과다징수 등 구설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한통의 계열사 사장은 회사 예산으로 자신의 대학원 박사과정 등록금을 냈다가 들통이 나기도 했다.

한통과 거래하는 업체 대표들은 취재에 응하면서 한결같이 익명을 요구했다. "공룡기업 한통에 밉보이면 국내 통신시장에서 감히 발붙일 수 없다" 는 이유에서다.

이들은 "한통의 개혁없이 우리 통신업계의 경쟁력은 기대할 수 없다" 며 "일본 NTT처럼 민영화와 회사분할이 유일한 해결책" 이라고 말했다.

한통은 이에 대해 "지금 세계 통신업계는 합병을 강화하는 추세" 라고 주장했다. 국내 통신시장을 지키고 해외로 진출하려면 덩치를 더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통은 이미 무리한 해외투자로 2천억원이 넘는 손실을 낸 것으로 드러났다.

폴란드 무선호출 등 6개 사업(6백48억원)은 사업개시 후 3년 이내에 파산시켰고, 대만의 시티폰사업 등 21개 사업(9백24억원)은 지속적인 적자로 고전하고 있다는 게 감사원의 지적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