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전자 위기론 왜 자꾸 나오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현대전자는 과연 어디로 갈 것인가. 최근 현대전자의 장래에 대해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현대전자 위기론(危機論)’까지 거론되면서 사면초가(四面楚歌)상황을 맞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대전자가 D램 가격 하락, 취약한 원가경쟁력, TFT-LCD(박막액정표시장치)와 통신부문의 적자, 차세대 투자의 지연 등 여러 위기상황을 직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하루 빨리 구조조정에 나서야 한다는 경고도 나온다.

현대전자는 올 상반기 6천5백억원의 영업이익에도 불구하고 현대투신 평가손, 스코틀랜드공장 매각손실, 계열사 주식매각 평가손 등 7천6백억원의 비경상 손실을 계상해 3천7백억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3조7천억원이라는 기록적인 순이익을 기록한 삼성전자와 비교되는 부분이다.

이 같은 위기상황으로 인해 LG전자가 내년 투자를 올해보다 20% 정도 늘려잡고 삼성전자가 올해 수준인 6조원대의 투자를 계획하고 있는데 비해 현대전자는 감가상각비 수준에서 투자를 억제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부터 떨어지기 시작한 D램 가격으로 인해 현대전자는 가장 큰 타격을 입은 회사로 꼽힌다. 반도체 전문가들은 64메가D램 1개당 총원가(제조원가에 금융비용을 더한 개념)가 삼성전자는 3.5달러인데 비해 현대전자는 5달러 초반에 이른다고 분석했다. 제조원가가 삼성전자에 비해 다소 높은데다 8조원이 넘는 막대한 부채로 인해 금융비용 부담이 크기 때문이라는 것.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고정거래가 7달러를 넘는 지금이야 괜찮겠지만 5달러대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내년 2분기에는 수익이 크게 악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메리츠증권 반도체 애널리스트인 최석포 팀장은 “현대전자의 사업구조는 싱크로너스 D램에 지나치게 편중돼 있어 안정적인 수익 확보를 위해 S램, 플래시메모리 등으로 제품구조를 다변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현대전자측은 ▶PC수요의 신장세가 다소 둔화되긴 했지만 연 15%선의 신장세가 유지될 것이며 ▶D램 수요가 디지털비디오디스크(DVD), 서버 등으로 다원화하고 있어 수요가 꾸준히 늘어날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D램시장의 전망은 밝은 편이라고 강조했다.

TFT-LCD와 통신부문도 현대전자에게는 버거운 짐이다. 올해 들어 LCD 국제가격의 계속적인 하락으로 현대전자의 TFT-LCD 부문은 적자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게다가 대만업체들이 본격적으로 물량을 쏟아낼 내년에는 LCD가격이 더욱 떨어질 것으로 예상돼 걱정이 크다. 휴대폰 보조금 폐지 등으로 수익성이 크게 악화된 통신부문도 어렵기는 마찬가지.

그러나 업계 전문가들은 “현대전자의 진정한 위기는 미래 경쟁력을 위한 투자가 충분치 못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삼성전자는 D램시장의 주도권을 잃지 않기 위해 막대한 투자비가 들어가는 차세대 생산라인 3백㎜ 웨이퍼 생산시설을 내년부터 갖춘다. 마이크론은 이미 차세대 제품인 1백28메가D램의 생산개수(월 3천만 개)가 64메가D램(월 1천만 개)의 3배에 이른다. 이밖에 인피니온·도시바· 히타치 등 경쟁업체들도 1백28메가 시장은 주도할 수 없다고 판단, 차세대 제품인 2백56메가에 집중투자하며 일전을 벼르고 있다.

그러나 현대전자는 신규투자와 라인 업그레이드에 필요한 재원 부족으로 올 연말에 가서도 1백28메가의 생산량이 64메가의 73%에 그칠 전망이다. 반도체 컨설팅업계 관계자는 “지금이야 현대전자가 D램시장의 1, 2위를 다투는 업체이지만 차세대 시장 선점을 위한 투자를 하지 못할 경우 메이저 업체로서의 지위를 상실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위기극복 방안은 ‘전문화’와 이를 통한 ‘투자재원 마련’이다. 지난 96∼98년 반도체 불황 때 추진한 무리한 사업확장의 결과인 TFT-LCD와 통신부문은 ‘실패한 다각화’였음을 인정하고 매각 또는 분사시켜야 한다고 이들은 지적한다.

또 자회사인 미국 맥스터사 지분, 하나로통신, 온세통신의 보유지분 등 핵심역량인 반도체사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 보유자산을 팔아 투자재원을 하루 빨리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내놓고 있다.

이러한 구조조정에 나서지 않고 기존 사업이나 자산에 집착할 경우 현대전자는 96∼98년 불황 때 경쟁에서 밀려난 대만·일본 업체들의 운명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경고다.

탁월한 시각, 깊이있는 분석, 지식경영시대의 동반자 이코노미스트 제558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