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중시하는 진보 … 북한 언급 없어 놀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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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독일인 얀 야노프스키(27·사진)는 “다섯 살 때 겪은 통일을 생각하면 ‘콜라와 바나나’가 떠오른다”고 말했다. 1989년 11월 9일 텔레비전에서 국경 출입 제한을 풀겠다는 발표가 나오자 야노프스키의 아버지는 다림질을 멈추고 옷을 주섬주섬 입었다. 야노프스키는 아버지와 어머니 손을 잡고 베를린 장벽으로 향했다. 동독 사람들이 조심스럽게 장벽을 넘어오자 총을 든 군인들도 막지 않았다. 거기서 아버지는 동독 대학생 4명을 차에 태우고 집으로 왔다. 그들에게 콜라와 바나나를 권하자 “너무 맛있다. 이런 게 어디서 났느냐”며 박수치고 웃었다. 야노프스키는 “어렸지만 통일을 감동적인 순간으로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야노프스키는 27일 서울 종로구 중국대사관 맞은편에서 열린 탈북자 강제 북송 반대 집회에 참여해 한국의 통일에 대해 고민했다. 참가자들과 함께 “중국은 탈북자 강제 북송 중단하라”라는 구호를 외쳤다. 올해 2월 독일 외교관 공채 시험에 합격한 그는 한국 근무를 희망하고 있다. 현재 고려대 대학원에서 정치외교학 석사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이날 집회 현장에서 “한국의 진보진영에서는 탈북자 인권 문제를 심각하게 보지 않는 것 같다”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진보는 인권을 중시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한국에서는 햇볕정책을 강조하면서 북한 문제에 언급이 없어 놀랐어요.” 미국과 일본에서 제정된 ‘북한 인권법’이 정작 한국에서는 왜 통과되지 못하는지 분석하는 것이 그의 숙제다.

 야노프스키는 베를린의 안트고등학교에서 만난 한국인과 친구가 되면서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됐다. “2002년 아버지랑 한국을 찾았는데 시골 정자가 너무 아름다웠어요. 한국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2005년 베를린자유대 한국학과에 1기로 입학했다. 지도 교수인 홀머 브로흘로스 박사는 “한국을 이해하려면 한반도 전체를 알아야 한다”며 북한의 말과 체제도 가르쳤다고 한다.

 야노프스키는 “독일에서는 통일 후 계층 간 갈등이 심화돼 테러가 발생했다”며 “한국도 통일 이후 벌어질 충돌에 지금이라도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류정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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