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컵] 또 골득실 '손가락 놀음' 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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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하다. 또 '경우의 수' 다. 월드컵도 아니고 올림픽도 아니고 아시안컵이다. 그런데도 8강에 오르느냐 마느냐를 놓고 경우의 수를 따져야 한다. 경우의 수를 따진다는 것은 자력으로는 8강에 오르지 못한다는 얘기다.

다른 말로 하면 초반 성적이 항상 나쁘기 때문에 다른 경기 결과에 따라 운명이 바뀐다는 것이다.

나만 잘하면 되는 게 아니라 경쟁 팀이 못해야 한다. 초조한 심정으로 상대가 못하기를 바라는 초라한 모습이 바로 한국 축구의 현주소다. 가까이는 시드니 올림픽 때 그랬고 4년 전 아시안컵 때도 상황은 똑같았다.

한국 축구는 들쭉날쭉하다. 쉽게 말해 믿음직하지 못하다.

잘할 때는 "한국 축구가 엄청나게 발전했다" 는 평을 듣지만 17일 쿠웨이트전과 같이 못할 때는 마치 1970년대 축구를 보고 있는 것 같다.

이미 세계 정상급으로 도약했다는 일본 축구의 경우 어느 대회든, 누가 출전하든 항상 자기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

한번 잘 생각해 보자. 한국이 제 실력을 발휘한 때는 타이틀이 걸리지 않은 경기에서다. 타이틀이 걸린 대회에서 한국은 여지없이 초반 부진의 전철을 밟으며 죽을 쒔다.

경험 부족이나 초반 긴장 등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아시안컵 멤버는 벌써 대표선수만 몇년씩 한 외국 진출 선수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다른 국가 선수들에 비해 경험도 풍부하고 더 긴장할 이유도 없다. 성적과 감독 자리가 직결되는 풍토에서 '반드시 우승해야 한다' 는 부담이 너무 큰 것은 아닐까.

국민의 비난이 쏟아질 때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오히려 감독과 선수들만 희생양을 만들어온 축구협회의 풍토가 이들의 반발을 불러온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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