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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매출 1200억 '아딸' 떡볶이 "겨울에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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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딸의 이경수 대표


이코노미스트1월 31일 오전 10시 떡볶이 프랜차이즈 아딸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는 오투스페이스 이경수(43) 대표는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개롱역점을 찾았다. 그는 도착하자 마자 33㎡(10평) 남짓한 내부를 꼼꼼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직원의 용모 점검부터 테이블·의자 등 홀 청소 상태, 떡볶이와 순대·튀김의 상태를 체크했다. 만족한 표정을 짓고서야 자리에 앉았다. 이 대표는 “시간이 날 때마다 매장에 들린다”며 “작은 점포일수록 음식의 맛과 서비스, 위생상태가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000년에 26㎡(약 8평)짜리 조그만 떡볶이 가게에서 출발한 이 대표는 현재(1월 31일 기준) 점포 903개의 국내 최초이자 최대 규모의 떡볶이 프랜차이즈를 거느리고 있다. 연 매출 1200억원에 이른다. 지난해 7월에는 중국 베이징에 첫 해외 매장(우다커우점)을 오픈 한 데 이어 2월 중에는 2호점(왕징)을 추가로 개설할 계획이다.

이 대표는 10년 전까지만 해도 신학자의 길을 걸었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목회자를 천직으로 알고 신학대학원 석사까지 마쳤다. 개척교회를 운영하는 아버지 밑에서 1996년부터 2000년까지 전도사로 일했다. 그러다 교회에 재정위기가 찾아왔다. 이 대표는 “재정 상태가 열악해 매달 월세를 낼 수 없을 정도였다”며 “월세라도 아끼기 위한 방법을 생각하다 1억 5000만원에 서울 금호동 신축 아파트 상가 지하 2층을 분양 받았다”고 말했다.

당시 7500만원의 보증금이 전부였지만 신축 아파트라 은행에서 분양가의 50%까지 대출을 해준다는 분양사무소 직원의 말을 믿고 계약했다. 그러나 막상 은행에서는 교회라서 대출을 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이미 이삿짐을 옮긴 상태였던 만큼 결국 친인척과 지인 등에게 돈을 꿔 겨우 입주했다. 어렵게 마련했지만 앞으로가 더 막막했다. 이 대표는 26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결혼해 이미 4살 된 딸과 아내가 있는 가장이었지만 이제는 교회까지 책임져야 했다.

그는 교회일을 접고 살기 위해서는 뭐라도 해야 했다(현재 목회는 하지 않는다). 결국 적은 자본으로 할 수 있는 게 뭘까 궁리를 하다 30년간 튀김장사를 해온 장인 가게 사업에 힌트를 얻어 2000년 11월 교회 옆 금호동에 분식집을 차렸다. 이 대표는 장인에게 튀김 만드는 노하우를 전수받고 딸은 옆에서 떡볶이 만들었다. ‘아딸’이라는 이름도 아버지 튀김, 딸 떡볶이라는 데서 유래했다. 그는 “먹어보지 않으면 맛을 모르기 때문에 누구라도 들어오고 싶게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겨울에도 찬물로 가게 유리를 깨끗하게 닦았다”고 말했다.

어린이와 학생의 입맛을 사로잡는데 성공했지만 어른은 잘 사먹지 않았다. 이유가 뭘까 곰곰이 생각한 끝에 그는 “비위생적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다음날부터 가게를 더욱 깔끔하게 하고 단정한 유니폼을 입었다. 또 늘 맛이 똑같은 떡볶이를 만들기 위해 계량스푼과 계량컵을 써서 정량화를 시도했고 매뉴얼도 만들었다. 당시 웰빙 열풍도 불면서 튀김가루에 허브를 섞었고 식용유도 콩기름, 옥수수기름, 채종유를 가장 맛있는 비율로 섞었다. 덕분에 맛과 위생까지 더해 어른 입맛을 사로잡기 시작했다. 개업 2~3달 동안 40만원 안팎이던 매출이 120만원으로 크게 늘었다.

둔촌점 실패 거울 삼아 떡볶이·순대·튀김에 집중

사업을 확장했다. 2002년 이대역에 아딸 분점 1호점을 냈다. 아빠와 딸이란 친근한 브랜드명과 깨끗한 음식과 서비스로 여대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입 소문을 타면서 TV에도 출연하게 됐다. 그러나 1호점 성공으로 아딸 브랜드가 알려지기 시작한 순간 위기가 찾아왔다. 바로 서울 둔촌점에 분점 2호점을 오픈하면서다. 이대점과 차별화를 위해 떡볶이 이외에 김밥, 우동 등 수십 가지 메뉴를 판매한 것이 화근이 됐다. 더구나 264㎡(80평)에 이르는 규모에 1층이 아닌 2층에 자리 잡았다. 다양한 메뉴로 더 많은 이익을 낼 수 있다는 욕심과 손님의 출입이 자유로운 1층이 아니어도 브랜드 가치로 2층을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걸림돌이 됐다.

결과는 참혹했다. 집 보증금과 지인에게 빌린 2억원의 투자금을 3년 만에 모두 날렸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수십 가지의 메뉴로 식재료비와 인건비로 감당하기가 어려웠고 2층의 한계를 넘지 못했다”며 “빚만 지고 당장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됐다”고 말했다. 단칸방을 구할 돈도 없을 정도로 막막했던 그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서울 상일동에서 그릇가게를 운영했던 사장이었다. “프랜차이즈를 하고 싶다며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그는 바로 가게로 달려갔고 식기부터 인테리어까지 직접 고르고 준비해 2호점을 다시 열었다. 이후 ‘정직하게 맛나는 음식을 만든다’는 원칙을 지켜 나가면서 2006년부터 매년 150여개의 프랜차이즈를 늘려나갔다.

둔촌동점의 실패를 큰 교훈으로 삼아 지금까지 아딸의 메뉴는 단순하다. 떡볶이와 순대, 튀김이 주 메뉴다. 고객의 요청으로 최근 잔치칼국수와 잔치쌀국수를 출시했다. 두 제품은 포장이 다 되어 있기 때문에 끓여내기만 하면 돼서 매우 간편하다. 아딸의 떡과 소스 등 모든 식재료는 본사에서 관리하고 납품한다. 3년 전 20억원을 투자해 물류센터를 증축했다. 그는 “900여개 가맹점에서 오후 5시까지 필요한 식재료를 본사에 주문하면 이틀에 한번씩 새벽에 배송해준다”며 “모든 프랜차이즈에서 같은 맛을 볼 수 있는 비결”이라고 말했다.

인터뷰가 막바지에 이를 즈음 이 대표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잠시 인터뷰는 중단됐고 그는 유쾌한 목소리로 대화를 이어갔다. 2분여 동안 통화한 상대는 그의 큰 딸이었다. 이 대표는 “15일 만에 프랑스에서 아내가 돌아와 공항에 마중 가는데 딸도 함께 간다는 전화였다”고 말했다. 여행에서 돌아오느냐는 질문에 “플라워카페 듀셀브리앙 아카데미에서 강의를 듣고 돌아오는 길”이라고 답했다. 듀셀브리앙은 프랑스어로 소금(sel)과 빛(brillant)을 의미한다. 별빛이 쏟아지는 프랑스 파리의 노천카페를 서울에서도 느낄 수 있도록 플라워와 카페를 결합시킨 공간이다.

지난해 11월 신사동에 1호점을 오픈했다. 카페와 꽃집, 플라워 아카데미를 운영한다. 취미반과 직장인반, 전문가반으로 구성된 플라워 수업은 플로리스트로 활동중인 오투스페이스 이사이자 그의 부인인 이현경씨가 가르친다. 12월에는 프랑스에 2호점을 오픈했다. 그는 “플라워 사업이 발전한 파리 등을 돌아보며 6여 년간의 준비 끝에 시작했다”며 “아딸에 이은 새로운 사업으로 성장시킬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성희 이코노미스트 기자 bob28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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