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소개로 왔다는 투자사 대뜸 "대한생명 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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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1999년 정부는 대한생명 매각을 위해 세 차례 공개 입찰을 실시하지만 결국 주인을 찾지 못했다. 그해 6월 7일 여의도 금융감독위원회에 직접 입찰제안서를 내러 온 한화 김승연 회장이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앉아 있다. 당시 공적자금 투입 전력 때문에 입찰에서 미끄러진 한화는 2002년 결국 대한생명을 인수한다. [중앙포토]

대니얼 머피가 내 사무실을 찾아온 건 1999년 5월 하순이었다. 파나콤이란 ‘듣도 보도 못한’ 미국 투자사의 회장이라고 했다. 기업인을 안 만났던 나다. 이름 없는 회사 대표라면 말할 것도 없다. 그가 예외가 된 건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부탁 때문이었다. “머피라는 사람이 갈 거요. 비즈니스하는 사람입니다.” JP는 말을 길게 하는 법이 없다.

 머피는 자신만만한 모습으로 내 사무실에 들어왔다. 해군 제독 출신이라 했다. JP와는 70년대부터 알고 지냈다고 했다. 말투가 거슬렸다. 강압적인 느낌이랄까. 허풍이 섞인 것 같기도 했다.

 “최순영 회장과 독점 계약을 맺었습니다. 공개입찰을 할 것 없이 수의계약으로 대한생명을 주십시오.”

 어거지다. 대한생명은 2차 공개입찰을 앞두고 있었다.

 메트라이프의 외자 유치가 불발로 돌아간 99년 1월 이후, 대한생명은 순식간에 주저앉았다. 1월 소위 ‘옷로비 사건’이 터지고 2월 최순영 회장이 구속됐다. 회사 돈을 빼돌린 혐의였다. 그즈음 실시된 실사에서 대생의 부실은 2조9000억원대로 드러났다. 3월 금감위는 대생에 경영관리명령을 내린다. 금감원이 대생을 접수해 경영 정상화에 나섰다. ‘대생을 경쟁입찰로 팔아 정상화시킨다’. 잡음을 잠재울 지름길이라고 봤다.

 5월 8일 1차 공개입찰은 무산됐다. 가장 강력한 인수 후보였던 LG에 대해 청와대에서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5대 재벌은 안 된다.” 옷로비 사건 등으로 들끓던 여론을 감안했던 듯하다.

 그리고 머피가 찾아온 것이다. 이미 2차 공개입찰 마감이 6월 7일이라고 발표한 상태. 머피는 최 회장의 주식을 믿고 위세 좋게 나오는 것이었다. 경영관리명령도 주주의 권한까지 빼앗을 수는 없다. 대주주인 최 회장은 옥중에서 이사회를 움직이고 있었다. 실체가 불분명한 파나콤과 다급히 손을 잡은 것도 정부가 자신의 주식을 소각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으리라.

 “마감시한 맞춰서 신청서 잘 내십시오.” 나는 머피에게 한마디 던지고 먼저 일어섰다. ‘오래 대화해 봐야 좋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당시 나는 “외자를 들여오겠다”는 이들을 수도 없이 만났다. 이들의 어법을 알고 있었다. 배경에 어떤 자금줄이 있다는 둥, 그간의 투자 이력은 어떻다는 둥 늘어놓게 마련이다. 파나콤은 그것조차 없었다. 자금줄이 어디인지도, 그동안 어디에 투자해 왔는지도 설명하지 않았다. ‘찜찜하다’는 기분이 들었지만 더 알아보지 않았다. 어차피 공개입찰에서 걸러질 거라 생각했다. 그게 실착이었다.

 2차 공개입찰과 3차 공개입찰은 잇따라 무산된다. 2차 입찰은 외국계 자본만 참여했던 것이, 3차 입찰은 유력한 인수 후보였던 한화가 공적자금을 지원받은 게 문제였다. 공적자금을 받은 회사가 그걸 갚기도 전에 신규 사업에 진출해서는 곤란했다.

 금감위는 마지막 카드를 꺼냈다. 부실 금융기관 지정. 기존 주주의 지분을 소각하고 공적자금을 투입해 국영회사로 만들기로 했다. 최순영 회장은 집요했다. 이번에는 실무 직원의 사소한 절차상 실수를 물고 늘어졌다.

 최순영 측은 8월 5일 기습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열어 “파나콤으로부터 2조5000억원의 외자를 유치한다”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금감위도 물러설 수 없었다. 6일 임시회의를 열어 “대생 기존 주주 지분을 모두 소각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너무 서둘렀던 탓일까. 실무진은 법적 절차를 생략했다. 최 회장 측에 부실 금융기관 지정과 감자 명령을 서면으로 알리고 진술 기회를 주는 ‘요식행위’를 건너뛴 것이다.

 이를 빌미로 최순영 측은 행정소송을 냈고, 8월 13일 금감위가 패소한다. 최 회장 측은 대생 자본금을 500억원 늘려 파나콤에 몰아준다는 안건을 24일 이사회에서 통과시킨다. 일이 그대로 진행되면 금감위는 대생 구조조정에서 손을 떼야 할 판이었다.

 파나콤이 물러난 건 사필귀정이었다. 도저히 500억원을 구할 수 없었던 데다 “증자하더라도 다시 감자할 것”이라는 금감위의 방침이 걸렸을 것이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파나콤은 이름만 있는 ‘서류상 회사(paper company)’였다. 97년에 설립됐고, 직원은 달랑 네 명이었다. 배경에 어떤 펀드도 없었다.

 금감위는 처음부터 다시 행정절차를 밟아나갔다. 9월 14일 대생을 부실 금융기관으로 지정하고 10월 1일 기존 주주 지분을 모두 소각했다. 그리고 공적자금을 투입해 대생을 국영회사로 만든다.

 99년 여름은 악몽처럼 기억된다. 핵폭탄급 대우 워크아웃과 꼬여버린 대한생명 국영화, 첨예했던 제일은행 매각 협상이 한꺼번에 진행됐다. 결정을 내리는 내가 ‘정신없다’고 느낄 정도였으면 실무자들은 어땠겠는가. 나는 칭찬을 잘 하지 않는다. 실수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는 편이다. 그러나 그때는 기분이 몹시 상했던 모양이다. 그렇게 고생한 대한생명 실무자들에게 “법적 절차를 안 지켰느냐”고 차가운 말을 했던 것 같다. 지금까지 마음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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