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 인정하는 것이 진리 출발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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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1995)의 저자로 유명해진 홍세화가 고국에 꼭 해주고 싶었던 말은 프랑스어로 '똘레랑스(tolerance)'라고 하는 관용(寬容)의 정신이다.

사실 현대적인 의미의 국제사회에 노출된 지 1백년이 채 넘지 않은 한국으로서는 관용의 정신이 의연히 강조돼야 옳을지 모른다.

서구 역사에서 오랫동안 여러 층위로 축적돼온 똘레랑스는 지배 이데올로기(종교나 정치적 이념 등)에 위배되는 이론이나 작품이라 할지라도 공존하고 발전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자세를 일컫는다.

현대에 들어와 정치적 신념이 다르다 해서 국가 등이 특정 사상을 억압하지 않는 것, 인종차별을 하지 않는 것 등으로 의미가 확대됐다.

1925년 초판이 나왔고, 40년 최종판이 나온 이 책은 서양의 오랜 지적 전통 속에서 저류를 형성해온 이런 관용의 정신사다. 주로 인물들의 행적에 초점을 맞춰 그 관용과 불관용(intolerance)의 역사를 살폈다.

저자는 네널란드 출신 미국 이민자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불관용의 상징인 나치에 저항해 관용의 정신을 실천한 행동주의자. 글의 논리가 힘찬 이유다.

'어떤 순교자로 만들지 말라' 며 종교적 관용정책을 지속한 로마의 율리아누스 황제, 중세 암흑기에 '우신예찬' 으로 인문정신을 일깨운 에라스무스, 의사이자 사상가로 종교의 차이에 관계없이 어떤 환자도 공동묘지로 보낸 적이 없는 라블레, '선한 일을 하고 진리를 찾는 것' 을 삶의 목표로 삼았던 백과전서파의 디드로 등. 2천여년의 역사 속에서 저자가 찾아낸 관용의 영웅들이다.

로마의 집정관이었던 퀸투스 아우렐리우스 시마쿠스는 기독교도와 이교도의 화해을 요청하며 이렇게 말했다.

"(궁극적인 진리가 무엇인지)해답에 이르는 길이 오직 하나여야 한다고 말하기에는 존재의 수수께기가 너무나 크다."

이 종교적 신념의 문제를 다른 차원으로 환원해 보더라도 관용의 진면목이 그대로 드러나는 명문(名文)이다. 관용에 인색한 채 살아가는 우리의 가슴을 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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