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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비스 수출 중국 4등, 한국 15등 … 제조업만 해선 고용 안 늘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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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사공일 전 한국무역협회장은 20일 “고용을 늘리기 위해서는 취업 유발 효과가 상품 수출의 두 배인 서비스 수출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형수 기자]

‘G20 전도사’ ‘세계 경제계의 마당발’….

 사공일(72) 전 한국무역협회장의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는 하나로 부족하다. 지난 30여 년간 경제학자와 고위 관료로 정부 안팎에서 열정적으로 활동해 왔기 때문이다. 그는 22일 한덕수 신임 회장에게 무역협회의 지휘봉을 넘기고 공직을 떠났다. 그는 “이제 자연인으로 돌아가지만 오히려 눈치 안 보고 정부와 국민에게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하겠다”고 말했다. 김종수 논설위원이 20일 오후 서울 삼성동 트레이드타워 50층의 무협 회장실에서 그를 만났다.

 -무역협회를 떠나게 됐는데.

 “재임 기간 중 무역 1조 달러와 세계 9위의 무역대국을 이룬 것은 크나큰 보람이다. 한·EU(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됐고, 한·미 FTA도 발효를 눈앞에 두게 된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협회 안팎에서 연임을 권했지만 진작 떠날 생각을 굳히고 있었다. ‘박수 칠 때 떠나라’는 말처럼 모두가 아쉽게 생각할 때 떠나는 전례를 남기는 것도 괜찮지 않은가.”

 -무역규모가 늘었지만 수출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그들만의 잔치’라는 지적도 많다.

 “우리나라 무역규모가 세계 9위라지만 수출품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3.1%였다. 계속 성장해 나갈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러자면 수출 구조를 바꿔야 한다. 10대 주요 품목이 전체의 50% 넘는 편중된 구조로는 성장세를 유지하기 어렵다. 특히 중소기업의 몫은 전체 수출의 30% 정도밖에 안 된다. 독일은 중소기업이 직접 수출하는 비중이 80%를 넘는다. 중소·중견기업이 대기업과 함께 수출의 중추를 담당할 수 있도록 품목을 다변화해야 한다. ”

 -수출이 늘어도 고용이 종전처럼 늘지 않는다.

 “서비스 산업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상품 수출은 세계에서 7등인데 서비스 수출은 15등이었다. 미국은 상품 수출은 2등에 서비스 수출은 1등이다. 독일은 상품 3등, 서비스 2등이다. 상품 수출 1등인 중국도 서비스 수출이 4등이다. 우리나라 수출에서 상품과 서비스의 불균형이 심하다는 얘기다. 서비스 수출의 취업 유발 효과는 상품 수출의 두 배가 넘는다. 그런데 제조업 중심의 수출정책만 펴다 보니 일자리 창출 효과가 줄어들었다. 서비스업 개방을 통해 경쟁을 독려하고, 정부는 과감한 규제개혁을 해야 한다. 예컨대 관광과 의료·교육 분야의 성장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중국의 해외 관광객은 곧 연 1억 명이 된다. 이들을 많이 유치하려면 우리나라에서 ‘먹고, 자고, 쓰게’ 해야 할 것 아닌가. 중국 사람들의 입맛에 맞는 메뉴를 개발하고 숙박시설도 늘려야 한다. 의료관광도 유망하다. 우리나라에 의료 목적으로 들어온 관광객 수는 지난해 8만 명이다. 싱가포르는 72만 명, 태국은 153만 명 정도 된다. 환자가 오면 의사·간호사·간병인이 필요하다. 외국인 환자와 동행하는 가족을 위한 호텔과 쇼핑시설도 필요하다. 그러면 연관된 일자리가 얼마나 많이 생기겠나. 그런데 정치적 이유 탓에 아직도 이런 분야의 규제를 푸는 데 진척이 없는 것이 안타깝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경제가 혼미하다.

 “지금 세계는 단극 체제, 양극 체제가 아니라 무극(無極) 상태다. 금융위기 직후엔 G20이 집단 지도력을 발휘하자고 모였고 작동이 잘 됐다. 그런데 유럽 재정위기 이후 G20의 리더십이 크게 약화됐다. 유럽은 내부 문제를 해결하기도 바쁘고 중국은 준비가 돼 있지 않다. G20은 더 적극적으로 국제적인 경제 현안에 개입해야 한다. ”

 -우리나라가 취할 입장은 뭔가.

 “현 글로벌 체제에서는 어느 한 국가가 주도권을 행사하기 힘들다. 그래서 오히려 우리나라가 역량을 발휘할 기회가 있다. G20 정상회의 의장국으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선진국과 신흥국 사이의 중간자적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선진국들이 정하면 따르는 추종자(follower) 의식에서 벗어나 주도권자(leader)로서의 자부심을 가질 때다. 경제개발과 환란 극복의 경험을 가진 우리나라는 국제적 리더로서 기여할 충분한 능력을 가지고 있고, 또 그 능력을 발휘할 기회도 많다고 생각한다.”

 -일부에서는 한·미 FTA 폐기 주장이 나온다.

 “정치적 수사로 끝나기를 바란다. 중요한 상대국과의 조약을 폐기하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혁명으로 출범한 정부도 외국과의 중요한 조약은 존중하는 게 국제적 관례다. 만일 한·미 FTA가 파기된다면 안보동맹국인 미국과의 관계는 말할 것도 없고 국가 신인도가 어떻게 되겠는가. 양국 정부가 노력해 FTA 발효 후 빨리 성과를 내야만 한다. 과거에 멕시코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체결했을 때 멕시코 일부에서 반대했지만 성과가 있었기에 그런 주장이 금방 없어졌다.”

 -최근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발과 함께 세계화에 대해서도 부정적 시각이 대두되고 있는데.

 “세계화(globalization)를 부정하는 가장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례는 북한이다. 폐쇄 경제를 영위한다면 환란과 금융위기 같은 것은 없겠지만 국민이 굶어 죽는다. 과연 우리가 그런 선택을 할 수 있겠는가. 우리나라는 무역과 투자를 통한 세계화와 시장개방을 통해 세계가 부러워하는 경제성장을 이뤄냈다. 위험이 따른다고 세계화를 중단할 수는 없다. ”

 -30여 년간 나라 안팎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면서 국제적 인물로 인정받는다. 그 비결이 뭔가.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다. 그동안 세계적 인사들과 허물없이 지내고 필요할 때마다 만나 도움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그 바쁜 사람들이 없는 시간을 쪼개 나를 만나주는 이유는 뭔가 자기들이 얻을 게 있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아이디어를 주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공부하는 수밖에 없다. 지금도 각종 세계 경제현안을 파악하고 새로운 비전을 구상하기 위해 적어도 하루 세 시간 이상 읽고 공부한다.”

◆사공일 전 한국무역협회장은=1940년 경북 군위에서 태어나 서울대 상과대학을 졸업했다. 미국 UCLA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73년까지 미 뉴욕대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귀국한 뒤에는 한국개발연구원(KDI) 재정금융실장과 부원장을 거쳐 전두환·노태우 정부에서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과 재무부 장관을 지냈다. 89년부터 10년간 국제통화기금(IMF) 특별고문으로 활동했고 2003년부터 현재까지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을 맡고 있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1992년 미국·캐나다·멕시코가 체결해 94년부터 발효됐다. 미국의 자본, 캐나다의 자원, 멕시코의 노동력이 결합된 당시 기준으로 인구 3억7000만 명, 지역내총생산(GDP) 6조 달러 규모의 대 경제권을 이뤘다. 이후 세 나라는 15년에 걸쳐 관세를 비롯한 무역과 투자장벽을 철폐했다. 일부에서는 미국 내 실업증대, 멕시코의 환경악화 같은 부작용을 지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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