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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생명·감정도 통제당하는 22세기 일본을 전복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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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노래하는 고래(상·하)
무라카미 류 지음
권남희 옮김, 네오픽션
각 권 461·376쪽
각 권 1만3500원

때는 22세기 일본. 문화경제 효율화 운동과 최적 생태 이념에 따라 일본 사회는 상·중·하 계층의 거주지 구분 정책을 추진한다. 일본판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다.

 더 충격적인 것은 삶과 죽음이란 자연의 원리를 거스르는 모습이다. 상류층은 고래에서 얻은 불로불사의 유전자를 얻지만 섬으로 추방된 범죄자는 하층민으로 ‘세포 내 노화시계’인 텔로미어를 절단 당해 죽는다. 뿐만 아니다. 권력을 가진 소수가 질서라는 이름 아래 다수를 감시하고 세뇌와 약물로 중·하층민의 감정과 욕망을 통제하는 것은 파괴의 또 다른 말이다. 때문에 중·하층민은 감정도 의지도 잃은 채, 살아 있지만 죽은 것과 마찬가지인 상태로 살아간다.

 하지만 그 속에도 ‘정신 줄을 놓지 않은’ 사람은 있는 법. 주인공인 다나카 아키라다. 책은 악질 범죄자를 격리한 신데지마 섬에서 태어난 그가 아버지가 죽으면서 남긴 비밀정보(국가를 전복시킬만한!)를 고위 권력자에게 전달하기 위해 섬을 탈출하면서 겪는 모험 이야기다.

 모험의 험난한 여정에서 그의 파트너는 이민 반란자의 후손들. 이들은 국가에 저항하기 위해 조사를 일부러 틀리게 쓰는 등 문법에서 벗어난 언어를 구사한다.

 아키라의 모험은 ‘죽음(死)에서 삶(生)으로의 탈출’이다. 그 과정에서 삶의 감각은 되살아난다. 작가가 주고 싶었던 메시지는 아마도 이런 것일 테다. “중요한 것을 이해했다. 살아가는 데 의미를 갖는 것은 타인과의 만남뿐이다. 그리고 이동하지 않으면 만남은 없다. 이동이 모든 것을 낳는다.”

 소재의 독특성 때문에 ‘변태적인 작가’라는 오명까지 얻은 무라카미 류의 이번 소설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공상과학(SF) 장르 등 여러 작품을 통해 일본 사회의 모순을 보여줬던 작가의 이번 작품도 잃어버린 10년 이후 양극화가 더욱 심화하는 일본에 시사하는 바가 커 보인다.

노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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