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Report] 부자증세, 고소득 아닌 과소비에 세금 매겨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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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크리스토퍼 피사리데스(左), 로버트 프랭크(右)

1%대 99%. 기업 생산성이 높아지면서 경영진은 막대한 부를 챙기지만 대다수 근로자에겐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다. 갈수록 커지는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부자에게 높은 세금을 물리면 어떨까. 부자가 가진 부를 빼앗아 가난한 사람을 지원하면 문제가 해결될까. ‘부자증세’를 둘러싸고 세계적인 석학들이 엇갈린 목소리를 냈다. 미래기획위원회와 경제·인문사회연구회가 23일 주최한 ‘글로벌 코리아 2012’ 행사에서다. 2010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크리스토퍼 피사리데스 런던정경대 교수와 『승자독식 사회』 『이코노믹 씽킹』의 저자 로버트 프랭크 코넬대 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부자증세라는 전통적인 재분배 방식은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노동경제학의 대가인 피사리데스 교수는 부자증세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높은 세율이 기업가의 혁신적 활동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그는 “국가 경쟁력을 위해 필요한 탁월한 관리자나 혁신적인 발명가들은 세율이 낮은 다른 나라로 가려고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업가의 활동을 북돋는 인센티브 효과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세율을 높이기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불평등을 그냥 두자는 건 아니다. 그는 “임금격차를 해소하지 않으면 자본주의는 붕괴할 수 있고, 월가 점령 시위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고 말한다. 시장원리에 맡겨서는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부자증세 대신 ‘고용 보조금’을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사회복지·의료 등 서비스 업종에 고용 보조금을 지급해 저임금 근로자 채용을 늘리자는 것이다. 기술 발전으로 인해 설 자리가 줄고 있는 비숙련 노동자를 지원하기 위한 정책이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많은 국가에서 증세는 고용을 줄이지만 보조금은 고용을 늘린다. 독일과 북유럽 국가가 이러한 방식으로 성공한 사례다. 고용의 불평등을 줄이는 민간기업에 세금 혜택을 주는 것도 대안이다. 저임금 근로자 임금을 올려주면 세금을 깎아주고, 고임금 근로자 임금을 올리면 세금을 더 물리는 방식이다. 그는 “복지정책을 설계할 때부터 고용을 저해하는 게 아닌 장려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프랭크 교수는 피사리데스 교수의 주장을 반박했다. “기업 최고경영자(CEO)가 세율을 더 높인다고 일을 하지 않을까. 그렇진 않다. 그들은 CEO가 됨으로써 많은 혜택을 누린다. 돈을 하나도 못 벌어도 명예 때문이라도 CEO로 일할 거다.” 증세로 인해 근로의욕이 떨어지는 건 중산층 이하에나 해당되는 얘기라는 뜻이다.

 프랭크 교수는 소득격차를 줄일 해법으로 ‘급격한 누진 소비세’를 주장한다. ‘고소득’이 아닌 ‘과소비’에 높은 세율을 매기는 새로운 방식의 부자증세다. 그는 “1년에 50만 달러(약 5억6000만원) 이상 소비하면 100% 이상 소비세를 물리자”고 제안했다. 예컨대 부자가 200만 달러(22억5000만원)를 들여 저택을 증축한다면, 200만 달러가 넘는 세금을 내게 하는 식이다. 누진 소비세로 부자가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리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득이 아닌 소비에 세금을 매기려는 건 소비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늘고 있어서다. 그는 이를 ‘지출연쇄작용’으로 설명했다. 점점 더 부유해지는 부자들은 큰 주택과 화려한 결혼식, 호화 파티를 즐긴다. 이는 비판할 게 아니다. 문제는 소득이 늘지 않은 중산층까지도 이를 부러워하며 따라 한다는 것이다. 아이를 좋은 학교에 보내기 위해 큰 집을 사고, 자녀를 위해 빚을 지면서까지 호화결혼식을 연다. 불평등이 심해질수록 중산층의 생활비 부담은 더 불어난다. 이를 해결하려면 상대적인 기준이 되는 부유층의 소비 수준부터 끌어내려야 한다는 설명이다. 프랭크 교수는 “누진 소비세는 불평등으로 중간계층의 비용부담이 늘어나는 현상을 요술처럼 해결할 만한 정책”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런 주장에 대해 피사리데스 교수는 “누진 소비세를 도입한다고 해서 기대한 결과가 나올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소득세를 올리나, 소비세를 올리나 그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을 거란 뜻이다.

크리스토퍼 피사리데스 런던정경대 경제학과 교수. ‘일자리 탐색 마찰’의 이론 체계를 만든 공로로 2010년 노벨 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미국 피터 다이아몬드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 데일 모텐슨 노스웨스턴대 교수와 함께였다. 탐색마찰 이론은 왜 한쪽엔 일자리가 있는데 다른 쪽엔 실업자가 넘쳐나는지를 설명한다. 구직자는 일자리를 찾는 데 시간과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마음껏 탐색하지 못한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구직자와 구인자 사이에 마찰이 생기고 일자리가 있어도 ‘마찰적 실업’이 발생한다. 피사리데스 교수는 실업으로 얻는 이익이 클수록 이러한 마찰적 실업이 증가한다고 설명한다.

로버트 프랭크 코넬대 존슨경영대학원 교수. 경제학 관련 베스트셀러 저자로 유명하다. 대표 저서로는 『승자독식의 사회』 『이코노믹 씽킹』 『부자 아빠의 몰락』 이 있다. 특히 『승자독식 사회』는 1995년 뉴욕타임스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승리한 1등이 모든 것을 독차지하는 무한경쟁의 본질을 ‘승자독식 현상’으로 정의하고, 그 부작용을 지적한 책이다. 그는 연예계나 스포츠 산업뿐 아니라 일반 노동시장에서도 승자독식이 확산하고 있다고 우려한다. 프랭크 교수는 현재 뉴욕타임스에 ‘이코노믹 뷰’ 칼럼을 연재하는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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