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80년대 분데스리가 ‘차붐’경기 TV 중계 주선했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4면

도필영 주한 독일대사관 공보관이 40년 동안 근무해온 서울 동빙고동 독일대사관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최승식 기자]

“1993년 3월 독일 통일의 주역인 헬무트 콜 수상이 서울을 방문했어요. 정부가 제공하는 차를 타지 않고 대사관 직원과 함께 버스를 타고 숙소에 왔어요. 다음 날 판문점의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방문해 한국 통일을 기원하는 연설을 하는데 가슴이 찡했습니다.”

 주한 외국대사관에서 40년 동안 근무한 최장수 ‘외교관’이 있다. 주한 독일대사관의 도필영(65) 공보관이다. 그가 독일대사관에 들어갔을 당시(1972년) 한·독 교역량은 1억1800만 달러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난해 265억 달러에 이를 정도로 성장했다. 그는 “8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에게 ‘라인강의 기적’을 가르쳤던 독일 정치인이나 기업인이 요즘 한국에 오면 ‘한강의 기적’을 보고 깜짝 놀란다”고 했다.

 그는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90년 독일 통일 때 한국의 관심은 온통 독일에 쏠렸다”며 “수많은 기자들이 통독 과정을 취재하는데 지원한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그는 40년 동안 국내 기자들의 독일 취재를 도왔다.

 도 공보관은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 등 6명의 한국 대통령이 독일을 국빈 방문할 때 지원했고, 독일 슈미트 수상과 바이체커 대통령 등 7명의 독일 국가 원수들의 방한을 도왔다.

 그는 또 독일 프로축구 리그인 분데스리가에 진출한 ‘차붐’(차범근)의 활약상을 한국에 알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차범근 선수가 독일에 간 초기엔 분데스리가에서 골을 넣어도 국내 팬들은 이 장면을 볼 수 없어 애를 태웠다. 이 때도 공보관이 나서 1980년대 MBC가 분데스리가 중계권을 확보하도록 중재했다는 것이다.

 “독일은 다수에 의한 합리적 결정을 존중하는 문화가 확립된 반면 우리는 아직 그렇지 못하다.”

 도 공보관은 한국과 독일의 정치문화를 이렇게 비교했다. 그는 “최근 독일 대통령에 당선된 요하임 가우크의 경우 야당이 추천했고, 집권당이 이를 수용했는데 이런 정치 문화가 한국에도 가능할까”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자이트 주한 독일대사는 3월 5일 독일 대사관저에서 도 공보관의 40년 대사관 근무를 축하하는 특별 만찬을 연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