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슬기 기자가 가봤습니다 안산 화랑초등학교 시 쓰기 수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05면

“눈을 감아봅시다. 오늘 있었던 일들을 전부 다 지구 밖으로 던져서 마음을 텅 비워 보는 거야.” 경기도 안산 화랑초 안차애 교사가 학생들을 명상의 시간으로 이끌고 있었다. 이 학교에서는 방과 후 특성화 교육으로 시(詩) 수업을 열고 있다. 14일 화랑초 교실에서 열린 시 쓰기 수업 현장을 찾아가 봤다.

김슬기 기자
사진=김진원 기자

시 교육에 참가한 학생들이 안차애 교사의 시 낭독을 들으며 눈을 감은 채 명상을 하고 있다. [김진원 기자]

3~5학년으로 구성된 20여 명의 학생은 안 교사의 말을 따라 눈을 감고 명상에 빠졌다. 곧이어 안 교사의 시 낭독이 이어졌다. 시는 3학년 채민서양이 지은 ‘맛있는 공부’였다. “수학을 튀겨 튀겨 자주 먹는 도넛을 만들자. 사회와 과학과 여러 가지 지식을 섞어서 샐러드를 만들자. 국어볶음과 수학튀김은 좋아하니까 맛있게 먹고 사회와 과학샐러드는 몸에 좋으니까 많이 먹자. 몸짱·공부짱 어린이가 되자.” 시 낭독이 끝나자 안 교사는 학생들에게 흰 종이를 나눠주며 시를 읽고 떠오르는 그림을 1분 동안 그려보라고 했다. 학생들은 시를 듣고 떠오른 장면들을 자유롭게 그려 나갔다. 3학년 김가영양은 활활 타오르는 불판 위에 수학·과학·국어가 담긴 프라이팬을 그렸다. 김양은 “시 수업을 들으면 창의력도 생기고 왠지 모르게 공부도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이 새록새록 샘솟는다”고 말했다.

패러디 시 지으며 풍자 놀이 … 창의력 쑥쑥

시와 친해지는 방법으로 안 교사는 ‘살아있는 시 고르기’를 추천했다. 요즘 아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쉽고 재미있는 시를 들려주라는 것이다. 안 교사는 “스마트폰을 쓰는 요즘 아이들이 옛날 아이들처럼 동시(童詩)의 감성을 갖고 있다고 여겨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아이들이라고 옛날식 동시만 들려줄 게 아니라 현대적인 감성이 묻어나는 시를 만나게 해줄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안 교사는 시를 처음 지어보는 초등학생들을 위해 ‘1분 연상 그림놀이’와 ‘패러디 시 짓기 놀이’를 만들었다. 1분 연상 그림 놀이는 시를 들은 후 1분간 연상 그림을 그리는 놀이다. 시를 듣고 연상되는 생각들을 종이 위에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이다. 안 교사는 “한 장의 그림을 그리는 일은 간단해 보이지만 1분 동안 아이들의 통찰력과 직관력은 최대로 동원된다”고 설명했다. ‘패러디 시 짓기 놀이’는 다른 사람이 쓴 시를 풍자하는 놀이다. 구절이나 낱말을 바꿔 풍자하는 표현으로 바꾸는 것이다. 이날 수업에서 권민정(화랑초 4)양은 ‘국어를 볶아볶아 제육볶음 만들자’는 친구의 시를 ‘국어를 쓸어쓸어 한 봉지 국어를 만들자’로 패러디 했다. 권양은 “친구가 쓴 시를 바꾸는 놀이이지만 또 다른 나만의 시가 탄생하기 때문에 흥미롭다”고 말했다.

계절 변화 등 주변 소재를 색다르게 표현

안 교사는 아이들이 본격적으로 시를 쓸 때가 되면 ‘낯설게 하기’ 놀이를 사용한다. 일상의 소재들을 다르게 보고 생각해 시적 심상을 얻는 방법이다. 분수를 보고 ‘친구들의 웃음소리 같다’고 표현하거나 둥근 보름달을 호떡, 엄마 얼굴, 축구공 등으로 상상하는 방법이다. 낯설게 하기를 발전시킨 ‘지도 놀이 시 쓰기’는 흰 종이 중간에 주제 낱말을 쓰고 바로 연상되는 단어 2개, 낯설게 연상한 단어 2개를 마인드맵 형식으로 그린다. 엄마를 떠올리면서 따뜻한 난로, 병을 치유해주는 병원을 연결시켰다면 낯설게 연상하기에 성공한 것이다. 안 교사는 “계절의 변화, 그날 읽은 책 등 주변 모든 환경이 창의적 시 쓰기를 위한 놀이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계절 사냥 놀이’는 밖으로 나가 해당 계절에만 느낄 수 있는 소재 10개를 찾는 놀이다. 봄에만 보이는 개나리·쑥·진달래 등의 소재를 찾은 후 ‘OO한 OO’로 표현하는 식이다. 안 교사의 수업을 들은 한 학생은 쑥을 보고 ‘우리 반 친구들 같다’ ‘귀엽고 정다운 쑥’이라고 표현한 시를 지었다.

‘독후감상 활동 시’를 써볼 수도 있다. 책에 나오는 주요 낱말 3개를 골라 해당 단어가 포함된 세 문장을 쓰며 줄거리를 간추린다. 그 후 세 단어를 중심으로 감상이나 편지를 쓰면 한 편의 ‘독후감상 시’가 탄생한다. 안 교사는 “시 쓰기는 언어를 사용하는 고차원적인 활동”이라며 “원칙을 가르치기보다 아이들이 온몸으로 시를 느끼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시 쓰기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수업 내용 시로 쓰면 심화학습 효과도

초등학생 시기의 시 쓰기는 통합적 사고 능력을 증진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시를 쓰면 주변 사물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고 흩어져 있던 정보를 한 데 뭉치는 사고력이 발달한다. 안 교사는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을 활용해 시 쓰기를 하면 학습 내용을 정리·이해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과학 시간에 지층과 암석에 대해 배운 김지우(화랑초 4)군은 ‘생각 지층’이라는 제목의 시를 쓰면서 지층의 특성을 자신의 생각에 연결시켰다. 지층은 시간 순서대로 쌓인다는 지식을 활용해 ‘나의 지층은 반항 알갱이, 우정 알갱이, 꿈 알갱이가 순서대로 쌓여있다’고 시를 쓴 것. 안 교사는 “일반 시 짓기는 은유와 상징만 가르치지만 공부와 연결시킨 시 쓰기는 배운 지식을 이용한 심화학습이 가능하게 한다”고 설명했다.

시 교육은 학생들의 자존감을 높이고 정서를 치유하는 역할도 한다. 안 교사가 만든 ‘나 사랑 시’ ‘너 사랑 시’ 쓰기는 자신과 타인에 대한 마음을 한 줄로 쓰는 놀이다. ‘나는 OO이다’ ‘내 마음은 OOO이다’라고 정리하면서 자신과 타인 사이에 얽힌 사랑·분노·미움의 감정을 이해하게 된다. 안 교사는 “초등학생일지라도 시를 쓰는 순간엔 자신의 마음을 찢고 우는 일도 있다”고 말했다. “화나는 일, 속상했던 일도 시 쓰기를 통해 ‘마음이 별 거 아니구나’ ‘분노는 버릴 수 있구나’를 아이들이 깨우친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