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사·항공정비사 … 전문학교에서 진로 찾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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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이 발표한 지난달 대한민국의 전체 실업률은 3.5%. 하지만 청년실업률은 8%다. 전체 실업률의 2배가 넘는다. 이 같은 상황을 예측한 걸까. 대학 간판을 포기하고 전문학교에서 자신만의 강점을 계발한 청년들이 있다. 이들은 졸업과 동시에 자신의 길을 당당히 걸어가고 있다. 이용제(28·스위스 글리옹호텔전문학교 졸)씨와 조민서(26·한국항공전문학교 항공보안과 졸)씨가 그 주인공이다. 두 사람은 “자신만의 특장점을 계발하는 것이 진로를 개척하는 무기”라고 입을 모았다.

글=최석호 기자 , 사진=최명헌 기자

스위스 호텔전문학교는 7학기제 실습 위주 수업

이용제씨

상문고 1학년 시절, 같은 학교 친구들과 2주 동안 다녀온 캐나다 어학연수는 이용제씨에게 ‘외국학교 진학’이란 목표를 세우게 했다. “입시 위주의 주입식 교육에만 익숙했던 제게 토론식 수업에 대한 경험은 ‘신세계’였어요.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공부하면서 좀 더 많은 걸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이후 세부적으로 진로를 고민하던 이씨는 ‘호텔은 다양한 분야가 결합된 사업체의 결정판’이라는 점을 눈여겨 보게 됐다. 그러고는 호텔산업의 본거지인 스위스로 유학을 결심했다. “스위스 호텔전문학교는 현장실습 위주의 수업과 인턴십으로 실무를 익힐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어요. 교과서의 내용만 암기하는 게 아니라 몸으로 부딪치면서 체계화된 지식을 쌓고 싶었습니다.”

 수능 응시까지 포기하고 선택한 전문학교. 입학은 어렵지 않았다. 토플(TOEFL) 550점을 넘고, 학교에서 치르는 기본적인 영어·수학시험만 통과하면 됐다. 그러나 학교생활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교과지식의 암기를 강조하는 한국식 교육방식이 몸에 배어 처음엔 실무를 강조하는 전문학교의 교육과정을 이수하기가 어려웠다. “7학기제(3년 반)인데, 매 학기 실무수업과 이론수업을 병행해야 하기 때문에 열심히 공부해야 수업내용을 따라갈 수 있습니다.” 신입생 때부터 호텔 프런트와 레스토랑 등에서 실무교육을 받고, 그 과정을 평가 받았다. 그는 “회계원리나 미시경제학 등 전공 교과도 호텔실무와 연계한 수업이 진행되기 때문에 실무수업을 소홀히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2학기와 5학기에 의무적으로 이수해야 하는 인턴십 과정을 통해 남들보다 빨리 호텔리어로서의 자질을 키울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전 세계에 있는 호텔 중 자신이 일하고자 하는 호텔을 골라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거쳐 인턴사원으로 입사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이씨는 국가별 호텔산업의 특징과 장·단점을 파악하면서 취업하고자 하는 호텔을 명확히 결정했다. 실제 5학기 때에 인턴으로 일했던 메리어트호텔은 현재 그의 일자리가 됐다. “인턴 과정에서는 객실관리와 레스토랑 매니저 업무는 물론, 인사팀까지 다양한 부서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에 ‘나만의’ 전문분야를 찾아낼 수 있었어요. 현재 근무하고 있는 프런트 업무도 당시 제겐 매력 넘치는 부서였거든요.” 결국 3년 반 동안 쌓아온 호텔 전문지식과 현장경험으로 그는 2009년 여름, 졸업과 동시에 취업에 성공했다. 그리고 이씨는 ‘세계 최고의 한국형 호텔의 총지배인, CEO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오늘도 코트야드 메리어트 서울 스퀘어에서 고객만족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취직 교육은 물론 교수들 팔걷고 업체 연결 나서

조민서씨

인천공항 미주 노선에서 보안검색 업무를 맡고 있는 조민서씨. 지난해 2월, 졸업도 하기 전에 직장인이 됐다. 그는 취업 후 연수과정에서 치른 모든 시험을 단 한번에 통과했다. 전문학교에서 배운 내용이 회사의 자격시험 실전에서도 그대로 적용됐기 때문이다. “X선을 활용해 유해물질을 가려내는 판독업무는 물론, 외국 승객들에게 탐승금지 물품에 대해 설명하고, 특수경비원으로 일하는 데 필요한 업무능력들을 학교에서 실무 중심의 교육을 통해 배운 것이 큰 도움이 됐어요.” 그는 전문학교에서 공항 보안업무에 필요한 용어를 배우고, 경호학·테러학 수업에서 공항에서 발생할 수 있는 돌발상황에 대한 대처법 등을 익혔다. 흔히 A·B·C라고 불리는 좌석번호를 공항 실무자들은 알파(Alpha)·브라보(Bravo)·찰리(Charlie)로 부른다는 것도 학창 시절부터 알고 있었던 내용이었다. “취업 후 연수를 받으면서 여러 번의 시험을 치렀어요. ‘승객이 출입금지 구역에 들어갔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기술하라’ 등 전문지식이 있어야 해결할 수 있는 내용이 시험에 나온 적도 있었어요. 그때도 학교에서 쌓아온 지식으로 답을 맞혀 입사 동기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죠. 지도 교관의 눈에 든 것은 물론이고요(웃음).”

 사실 그는 군대를 제대한 2008년, 23살 나이에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2005년에 제주대학 해양학부에 입학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1년 만에 자퇴를 결정했다. 군에서 복무하면서 ‘항공보안’에 대한 꿈을 키웠다. “남보다 일찍 현장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택한 길이 전문학교였죠.” 입학한 뒤엔 1주일에 9시간씩 실용회화 수업을 듣고, X-레이 판독 연습을 생활화하면서 현장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경쟁력을 키웠다.

 하지만 마지막 학기가 도래하자 그에게도 취업에 대한 부담이 엄습했다. “처음엔 ‘취직이 안 되면 어쩌나’ 고민이 많았죠. 하지만, 전문학교의 교수들 상당수가 현장에서 실무책임자로 일한 경험이 많아요. 교수들이 나서서 학생과 관련 분야 업체를 연결시켜주는 징검다리 역할을 해줬어요. 졸업 전에 보안업체에 취업할 수 있었던 것도 학생들이 실전에 능한 교육을 받고, 교수가 학생의 우수성을 알렸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학기마다 인성교육을 받으면서 이력서 작성 요령과 면접 대비법을 배운 것도 도움이 됐어요.” 조씨는 대학 재학 시절을 떠올렸다. “그때 제가 대학 간판만 고집했다면 지금 취업과 진로 때문에 걱정하고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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