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힘으로 오른 주가 … 실적 부진에 조마조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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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지난해 상장기업의 이익이 20% 줄었다. 기업 실적은 당분간 더 나빠질 전망이다. 그런데도 주가는 쉼 없이 오른다. 올 들어 10%나 급등했다. 기업 실적 따로, 주가 따로 가는 장세에 대한 불안감이 커진다.

 21일 상장사협의회 분석에 따르면 325개 상장기업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53조5533억원으로 전년보다 18%(11조7831억원) 줄었다. 순이익도 20.6% 감소했다. 매출액은 867조3935억원으로 5.76% 늘었다. 거래소시장에 상장한 12월 결산기업 중 이날까지 실적을 공시한 곳을 대상으로 집계한 결과다. 지난해 유럽 재정위기 등의 여파로 세계 경기가 나빴기 때문이다. 수출이 많은 전기전자 업종의 실적 악화가 두드러졌다. 영업이익이 11조원으로 전년보다 41% 줄었고 순이익도 9조1000억원으로 48%나 감소했다. 해운 등이 포함된 운수기업의 영업이익도 74%나 줄었고, 6000억원 적자를 냈다. 반면 자동차 등의 운송장비 업종은 매출이 15% 늘고, 순이익도 5% 증가했다. 내수 중심인 유통업종의 실적도 상대적으로 좋았다.

 기업 실적은 당분간 더 나빠질 것으로 보인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엔가이드에 따르면 증권사들이 추정한 올해 1분기 105개 주요 기업의 영업이익 전망치가 지난해 9월 말에 비해 10% 하락했다. 지난해 9월 말 증권사들은 이 기업들이 올 1분기에 26조9000억원의 영업이익을 낼 것으로 봤다. 하지만 12월 말 영업이익 전망치를 25조5800억원으로 5.21% 낮춰 잡았고, 최근엔 5.5% 더 내렸다.

 주가는 딴판이다. ‘주가는 실적의 거울’이라는 말은 요즘 맞지 않는다. 올해 1826으로 출발한 코스피지수는 21일 2024로 10% 급등했다. ‘유동성 장세’라는 데 이견이 없다. 외국인은 지난달 월간 기준 사상 최대인 6조2500억원을 순매수해 주가를 끌어올렸다.

 실물경기는 살얼음판 위를 걷는데 돈의 힘으로 주가가 오르니 걱정도 커진다. 대신증권 황수호 연구원은 “유동성 기대감에 가려졌던 실물경기 불안요인이 부각되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동양증권 김주형 연구원은 “유가 상승에 따른 물가 상승 위험은 항상 존재하는 위험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뉴욕상업거래소(NYMEX) 기준 서부텍사스유(WTI) 가격은 지난 13일 100달러를 돌파한 후 연일 올라 20일 105달러에 거래됐다. 토러스증권 박승영 연구원은 “물가 상승 압력이 높아지면 저금리 기조를 유지할 명분이 약해진다”고 설명했다. 세계 각국의 돈 풀기가 반드시 국내 주가 상승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대신증권 황 연구원은 “일본 중앙은행이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기 위해 양적 완화에 나서고, 이에 따라 엔화 가치가 떨어지면 국내 기업의 수출 여건은 더 나빠질 수 있다”고 했다.

 조영현 동부자산운용 상무는 “각국 중앙은행은 돈을 풀어 시간을 버는 동안 실물경기가 회복되길 기대하는 것”이라며 “바람대로 선순환이 이뤄지면 기업 실적이 회복되고 주가도 안정되겠지만 반대의 경우 물가 급등 등 부작용이 심각해진다”고 말했다.

 낙관적인 시각도 있다. 하나대투증권 조용현 연구위원은 “정부가 유동성을 공급해 주가가 오르면 ‘유동성 장세’, 민간이 공급하면 ‘실적 장세’라고 한다”며 “미국 경제지표 개선 등을 고려하면 하반기 실적 장세로 이어지는 선순환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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