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덕일의 고금통의 古今通義

담파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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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이덕일
역사평론가

조선의 유명한 애연가(愛煙家)는 계곡(谿谷) 장유(張維·1587~1638)인데 그는 ‘담배의 효능을 칭송한다(稱頌南草之效能)’는 글도 남겼을 정도다. 이 글에서 장유는 남초(南草·담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배고플 때는 배부르게 하고, 배부를 때는 배고프게 하며, 추울 때는 따뜻하게 하고, 더울 때는 시원하게 한다”고 말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장유는 또 ‘담배가 앞으로 중국의 차처럼 세상에서 쓰일 것이다(南草之用於世殆將如中國之茶)’라는 글에서 “나는 담배가 앞으로 중국의 차(茶)처럼 세상에 널리 쓰일 것이라고 여긴다”라고 담배의 미래를 예언했다. 차는 서기 4세기께인 위진(魏晉)남북조 시대에 시작돼 당송(唐宋) 때 성행하다가 천하의 필수품이 되는데 1000여 년이 걸렸지만 “담배는 유행한 지 수십 년이 안 되었는데 이토록 성행하니 ‘백년 후에는 그 이익을 두고 차와 다툼을 벌일 것’이다”라는 논리였다. 담배는 한 세기면 필수품이 될 것이란 예언은 그대로 실현되었다.

 장유보다 100여 년 뒤의 인물인 도곡(陶谷) 이의현(李宜顯·1669~1745)은 숙종 46년(1720) 청나라에 다녀와 쓴 『경자연행잡지(庚子燕行雜識)』에서 청나라 사람들에 대해 “담배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피우지 않는 사람이 없어서 손님을 대접할 때 차와 함께 내놓는다. 그런 이유로 담배를 ‘연다(煙茶)’라고 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장유의 예견대로 담배는 차처럼 통용되었던 것이다.

 담배가 이렇게 유행하게 된 것은 담배를 약이나 건강식품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 문신 이유원은 『임하필기(林下筆記)』에서 “남쪽 오랑캐 나라[南蠻國]에 담파고(淡婆姑)라는 여인이 있었는데, 담질(痰疾)을 앓다가 남령초(南靈草·담배)를 먹고 낫자 그 여자의 이름을 따서 (남초라고) 지었다”고 말하고 있다. tobacco의 음역(音譯)으로 추측되는 담파고가 담파고(淡婆姑)라는 여인 이름이 되었다가 담(痰)을 제거한다는 담파고(痰破姑)로 변했다.

 조선의 담배 열풍은 담배가 적비(赤鼻·붉게 부은 코)를 치료한다거나 담을 제거한다는 소문이 나면서 더욱 거세지는데 이덕무(李德懋)는 ‘사소절(士小節)’에서 “기연자(嗜烟者·담배를 즐기는 자)들은 걸핏하면 충담(蟲痰)을 없앤다’고 말하지만 내가 보니 담배를 즐겨 피우는 자도 충담으로 고생한다”고 말했다. 3월 1일부터 서울시내 중앙차로 버스정류소에서 담배를 피우면 과태료가 10만원이란 소식이다. 장유도 담배가 공공의 적으로 몰릴 것은 예견하지 못했다. 끽연가(喫煙家)들의 수난시대다.

이덕일 역사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