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해외축구 엿보기]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3]

중앙일보

입력

홀리건이 일으킨 축구사 최대의 비극

축구를 보러 왔다가 서포터들끼리의 싸움에 휩쓸린 관중들은 훌리건들을 피하고자 관중석은 아수라장이 되 어버렸고. 이 관중들 위로 콘크리트 더미가 쏟아져 내렸다. 혼란 속에서 경기장의 일부가 무너진 것이다.

최고의 경기를 보기 위해 모인 관중들과 TV시청자들은 축구경기가 아닌 아수라장을 생생히 보고 말았다. 결국 세계 축구사에 39명 사망에 454명 부상이라는 있을 수 없는 비극으로 이 사건은 기록되었다.

사건의 파장은 컸다. 벨기에 경찰이 사건 주동자 26명을 구속, 사법처리를 한 것을 비롯, 유럽축구연맹은 5 년간 잉글랜드 프로클럽들의 유럽대회 참가를 금지시켜버리는 제재조치를 단행했으며, 영국정부도 경기장 폭력에 대한 특별법을 제정하기에 이른 것. 말할 것도 없이 '축구의 종주국' 잉글랜드 축구의 명예는 땅에 떨어져 버렸다.

그리고 4년뒤, 드디어 잉글랜드 서포팅 문화가 '멸절'되다시피 하는 사건이 재발했으니 바로 '힐스버루 사건'이다.

1989년 셰필드 힐스버루 경기장에서 벌어진 노팅검 포리스트와 리버풀간의 경기에서 1950년대 한국에서 가끔가다 발생한 '일시에 많은 인원이 한 곳에 쏠려서 압사 당한' 사건이었다.

95명이 죽고 170명이 부상당한 힐스버루의 관중압사사건은 '테일러 리포트'라는 보고서로 작성되었는데, 이 보고서를 통해 그 동안 특정 훌리건을 대상으로 적용되었던 '서포터 특별법'이 일반 관중들에게까지 확산 적용되기에 이르렀다.

또한 종래까지 의자가 없었던 서포터들의 전용석에도 의자가 설치되었다. 관중들이 경기 중에 일어설 수가 없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다. 말할 것도 없이 이것은 잉글랜드의 축구팬들에겐 청천 벽력같은 사건이었다.

요즘 위성 TV에서 방영하는 잉글랜드 프로축구 경기를 보면 골만 들어갔다 하면 얌전하게 앉아있던 사람 들이 일시에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이전, 80년대 이전만 하더라도 경기 내내 일어나서 방방 뛰면서 응원하던 사람들을 볼 수 있었고, 잉글랜드 축구장은 활기에 넘쳤다.

하지만 힐스버루 사건이 일어 난 뒤부터 그 분위기는 점차 사그라져 갔다.

서포터들과 일부 관중들이 정부의 방침에 저항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구단에서 고용한 경기장 안전 담당 자들이 훌리건이건 일반 관중들이건 가리지 않고 일어서서 경기를 보는 사람들에게 제재를 가하고 단체표 를 끊어도 좌석은 여기저기로 흩어지게 하는 등 구단과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서포팅 문화 자체에 대해 간 섭을 한 결과였다.

잉글랜드의 축구를 빛낸 서포터의 출발지는 잉글랜드였지만 그들의 과격화를 경시한 결과 서포터들 스스로가 자신들의 무덤을 파게 된 꼴이 된 것이다. 더불어 유명 스타들도 잉글랜드 프로리그를 떠났다.

86년 월드컵 득점왕인 게리 리네커는 J리그의 나고야 그램퍼스팀에 입단한 뒤 대표선수에서 물러났고, 90년 월드컵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준 데이비드 플래트와 신예 폴 개스코인도 해외 리그를 전전했다. 이러한 부진의 결과 잉글랜드는 1994년 미국 월드컵의 지역 예선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겪게 된다.

이러한 충격적인 성적으로 맹 비난을 받은 잉글랜드 축구협회(FA)는 드디어 잉글랜드 프로축구의 부활에 총력을 쏟아 부었다.

2년 뒤에 벌어질 Euro96에서의 명예회복 및 '축구의 종주국'으로서의 자존심을 찾기 위 한 노력이었고, 이러한 잉글랜드 축구협회의 국내리그를 부활시키려는 움직임은 뜨거웠다. 관중을 경기장으로 불러 올 수 있는 자국인 스타들을 키우고 해외 스타들을 영입하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부활을 위한 잉글랜드 축구의 노력과 열매

94년 미국 월드컵 직후 독일의 클린스만이 토튼햄 핫스퍼로 온 것을 필두로 하여 루드 굴리트, 데니스 베르 캄프, 다니엘 아모카치 등의 세계적인 스타들이 잉글랜드로 진출했다. 94-95시즌만 하더라도 이러한 해외선수 영입에 1부리그 20개 팀이 퍼부은 돈만 하더라도 1억1천400만 파운드였다.

당시 한국돈으로 877억8천만원, 지금 기준으로 환산하면 1조 7천억에 가까운 돈이다.

시장 규모만 하더라도 단번에 이탈리아 세리에 A, 스페인리그를 위협할 정도의 양적, 질적 팽창이었다. 그뿐 아니었다.

잉글랜드는 오래된 구장 설비를 개혁하기 시작했다. 1923년 건설된 '축구의 성지' 웸블리도 96년 Euro'96을 치른 다음 해체공사에 들어간 것이 대표적으로 이외에도 여러 구장들에 대한 '축구장 재건 사업'을 펼치기 시작했고. 여기에 또 수억 파운드의 돈을 쏟아부었다.

거기다가 테리 베너블스, 글랜 호들 등의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들은 '베이비 제너레이션 세대'라 할 수 있는 70년대 이후 태어난 신세대인 데이비드 베컴을 필두로 스티브 맥나마난, 네빌 형제, 마이클 오언 등의 '젋은 사자들'을 대표팀에 발탁했고, 이들은 뛰어난 활약을 펼쳐 잉글랜드 팬들의 발걸음을 축구장으로 오게 한 것 등, 잉글랜드 축구는 부활의 함성을 크게 외쳤다.

그러나 이것도 모자라 잉글랜드는 얼마 전 '선수보유 규정'을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다른 EU와는 달리 이전부터 잉글랜드의 '외국인 선수 보유규정'은 달랐다.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 북아일랜드, 아일랜드 선수들의 경우는 각자의 리그에서 '외국인'으로 인정되 지 않고 뛴다.

즉 외국인 보유제한이 3인이라지만 위의 5개 FA 소속의 선수들은 그 규정에 제한 받지 않았다.

또한 다른 EU국가와는 달리 'EU에 가입되지 않는 나라들의 선수를 보유할 수 있는 기준'에서 '그 선수가 소속된 FA가 치른 A매치에 70% 이상 경기 출장한 선수만 보유할 수 있다'는 규정도 있었다. 그 규정이 결국 올해 6월 경 해제되었다.

해제된 이유는 '더 많은 스타들을 영입하여 경기장에 관중들이 오 게끔 해야 한다'는 것과 '구단의 수입 중 하나인 선수 이적을 더 자유롭게 추진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만 큼 잉글랜드 축구협회와 구단들이 '리그 활성화'에 계속해서 신경을 쓰고 있음을 나타내 주는 것이다.

BskyB라는 잉글랜드의 한 케이블 TV에서 나오는 우리에게 있어 감동적인 축구광고가 있다. 어릴 적 아버 지의 손에 이끌려 열광적인 경험을 한 아들에게 아버지는 이렇게 말한다.

"You have one thing to remember so far. When you choose a team, choose carefully. Because that's yours for life."

"이제 너가 기억해야 할 것은 네가 팀을 고를 땐 신중해야 한다는 거다. 너가 고른 팀은 평생 너의 것이 될 테니까."

축구의 종주국은 누가 뭐라고 해도 잉글랜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