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민중신학의 '에일리언 전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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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레토릭을 최근에 배웠습니다. 많은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멋지다는 얘긴데, 한 국내 소장학자가 현대 철학자 질 들뢰즈를 설명하면서 그야말로 SF영화 '에일리언' 속의 괴물과 같다는 비유를 한 겁니다.

들뢰즈는 일단 스피노자.칸트 철학에 대한 각주(脚註)달기로 시작합니다.숙주(宿主)의 몸에 일단 자신을 숨기고 자양분을 흡수하는 것이죠. 핵심은 막판 뒤집기인데, 숙주의 몸을 찢고 나오면서 들뢰즈가 내놓는 결론이란 스피노자.칸트는 물론 서양철학에 대한 전복행위입니다.

에일리언이 따로 없는 것이죠. 여담이지만 '에일리언 전략' 은 미셸 푸코의 '외곽을 때리는 노회함' 과 비교됩니다.

푸코는 철학 근방에 얼씬하지도 않은 사람입니다.대신 법학.의학 동네를 어슬렁거립니다.그걸 기반으로 서양철학의 중심부에 돌진해 완전히 뒤집어놓은 겁니다.

한데 기자는 1970년대 이후 한국의 민중신학에서 에일리언의 또 다른 진면목을 봅니다.여기서 숙주란 서양의 지적전통 일반을 말합니다.

민중신학의 이런 성취를 기자는 주저없이 '동시대 인문학의 값진 열매' 라 규정하며, 괜한 위기론을 유포시키는 인문학이 따라 배워야 한다고 봅니다.

지난 주 영국 주교회의에서 펴낸 〈산다는 것이란 되어간다는 것〉을 리뷰하면서 지면이 짧아 '에일리언으로서의 한국신학' 대목은 채 언급을 못했습니다.

이를 테면 서남동과 함께 민중신학을 일궈낸 대표적 신학자 안병무 선생, 그는 서양 교회의 자기변신 노력을 추월한 지 오랩니다.

예를 들어 〈산다는 것이란…〉은 기독교 도그마를 넘어서려는 탄력성을 보여주는 변신임이 분명합니다.이를테면 타 종교에도 '말씀의 씨앗' 이 숨겨져 있다면서 종교간 대화를 권장하기도 합니다.하지만 삼위일체론이나 그리스도론 같은 것은 신학의 핵심으로 의연히 옹호합니다.

반면 안병무 선생은 그것마저 가차없이 흔듭니다.고대 그리스.로마에서 흔했던 신인(神人)의 이미지를 예수 위에 뒤집어씌운 근거없는 이원론(二元論)의 틀에 불과하다는 것이죠. 전공을 불문하고 누구라도 많은 암시를 얻을 책인〈민중신학을 말한다〉(한길사, 1993년)에서 그는 묻습니다.

"만일 기독교가 로마 세계 대신 (불교가 중국에 들어왔듯이) 고대 중국에 먼저 들어왔더라도 과연 신학이 지금의 모습과 같았을까?" 따라서 그가 볼때는 서양신학이란 것도 전복돼야 할 '숙주의 몸' 일 수 있는 겁니다.

바로 그런 맥락에서 "올바른 세상을 위해서라면 교회 문을 닫을 수 있다" 는 당찬 말도 나옵니다.

민중 신학의 적손(嫡孫)인 소장 신학자 김진호(38)의 발언이죠. 이번 주 얘기는 다소 현학적인 담론입니다.

하지만 신학의 일취월장 소식도 전해드릴 겸 모래알처럼 작아진 인문학과 출판계에 서양의 지적전통에 매달리지만 말고 '에일리언의 꿈' 을 가져달라는 말을 전하고 싶은 겁니다.

본디 '에일리언의 꿈' 이란 꼼짝없이 서양의 패러다임에 갇혀온 근현대사 모두의 웅대한 꿈이 아니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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