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게임·페이스북에 미친 삼남매, 6개월 로그아웃 실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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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로그아웃에 도전한 우리의 겨울
수잔 모샤트 지음
안진환·박아람 옮김
민음인, 412쪽, 1만 6000원

몇 년 만에 책장에 꽂아두었던 새 공책을 폈다. 6개월 동안 컴퓨터·스마트폰·TV·게임기를 끊고 살았던 저자의 실험에 동참할 요량이었다. 이 책의 리뷰만큼은 아날로그 방식으로 써보리라. 아, 그런데 영감이 떠오르지 않는다.

 오랜만에 집어 든 볼펜이 중지를 누르는 게 점점 신경질이 나자, 미친 사람처럼 노트북을 꺼냈다. 깜빡깜빡 움직이는 커서와 인터넷 아이콘을 보니 마음이 안정된다. 이쯤 되면 내가 노트북을 쓰는 건지, 노트북이 나를 쓰는 건지 모르겠다.

 호주 퍼스에 살고 있는 저널리스트이자 싱글맘인 수잔 모샤트는 어느 날 결심을 한다. 삶을 로그아웃 시켜버리자. 아이폰 매니아에 밤낮없이 노트북을 끼고 살았던 그는 세 아이와 단절되어 있는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이제 막 성인이 된 애니는 구글 없이는 리포트를 쓸 수 없고, 15세 빌은 게임에 심취해 있으며, 14세 막내 수지는 페이스북을 하느라 오프라인 관계맺기에 통 관심이 없다. 저자는 아이들의 원성을 감수하고 6개월간 집을 ‘스크린 금지구역’으로 선포한다.

 변화는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됐다. 방안에서 스크린과 은둔하던 아이들은 점점 거실과 주방으로 나오기 시작한다. 애니는 엄마가 있는 부엌에 들어와 요리를 함께하며 수다를 떤다. 빌은 색소폰을 불고 무라카미 하루키 책을 읽기 시작했다. 성장기인 수지에겐 잠 잘 시간이 생겼다. 밤늦게까지 페이스북을 하느라 늘 잠이 모자란 아이였다. 아이폰을 들여다보면 정보의 홍수 속에 살던 엄마는 종이에 칼럼을 쓰며 좀 더 깊은 사유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저자는 “아이폰을 들고 태어난 아이들에게 디지털이 없는 세상을 학습시켜주고 싶었다”고 했다. 책은 진짜 삶을 즐기는 과정을 유쾌한 터치로 풀어낸다. 그리고 실험을 통해 남긴 것을 디지털 노예가 된 현대인에게 전파한다. “온 마음을 다해 실제 삶(real life)을 사랑할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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