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파이터로 MB 특명 수행할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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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16일 한덕수 주미대사의 사의 표명, 그리고 한국무역협회 회장 추대. 갑작스럽고 비정상적인 인사로 보이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결심이 작용했다는 게 복수의 정부 소식통 설명이다. 익명을 원한 정부 고위 당국자는 “향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발효 이후 이행 과정에서 무협 회장의 역할과 한덕수 대사의 역량을 고려한 결심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특정 인사의 주미대사 발탁에 따른 한 대사의 ‘경질성 사임설’을 부인했다. 아직 신임 주미대사 인선을 하지 않은 상태이며, 순수히 한·미 FTA 대책을 먼저 고려했다는 것이다.

 실제 사공일 무협 회장도 후임 회장의 최적임자로 한 대사를 이 대통령에게 천거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한 대사가 현직 재외공관장이어서 민간인 신분인 무협 회장으로 추대할 수는 없다며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고 한다.

 무협 회장은 평소엔 큰 실권 없는 명예직이지만 한·미 FTA의 국내 이행과정에서 수출입 업체들의 의견수렴과 제도 개선, 그리고 FTA에 대한 찬성여론 조성에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 이 대통령도 ‘정부에만 맡겨 놓을 수 없다’는 뜻을 보였다고 한다. 또 김종훈 전 통상교섭본부장이 총선에 뛰어들 채비를 하고 있다는 점도 한 대사의 무협 회장 추대에 영향을 줬다. 김 전 본부장이 정계로 발을 내디딘 이상 민간 부문의 거물급 ‘FTA 전사’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이런 청와대의 판단과 제안을 한 대사도 수용했고, 그 후속 대응으로 16일 전격 사의를 밝혔다는 얘기다.

 한 대사가 17일 무협 회장단 회의에서 정식 회장으로 선출되면 야권에서 제기한 한·미 FTA 폐기론에 강력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FTA로 수혜를 볼 수출입업체들의 의견서를 야당에 제출하고, 시장개방에 따른 피해업종 대책을 내놓고, 대국민 홍보에 나서는 등 체계적인 ‘FTA 정착 활동’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런 활동엔 노무현 정부 때 한·미 FTA를 주도한 경험이 있는 한 대사가 적임자라는 게 정부는 물론 재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무협은 17일 오전 최종 회장 후보를 추대한다. 협회 관계자는 “더 이상 선임을 미룰 수 없어 이날 회장단 회의에서 결론 낼 예정”이라고 말했다. 무역업계에선 그동안 “이번엔 민간 출신이 회장이 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잖게 나왔지만, 이번에도 정부에서 낙점한 관 출신이 선출될 상황이다. 무협은 1946년 창립된 이래 16명의 회장이 나왔는데 업계 출신은 박용학 전 대농그룹 회장, 구평회 전 LG상사 회장,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 등 3명뿐이었다.

 한편 후임 주미대사로는 천영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현인택 전 통일부 장관, 박진 의원 등이 거론되고 있다. 다만 청와대 기류에 밝은 한 소식통은 “외교안보 관련 인사가 아닌 의외의 인물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외교가에선 핵심 재외공관장인 주미대사 후임을 정하지 않은 채 무협 회장으로 ‘차출’하는 식의 인사에 대해 수긍이 가지 않는다는 시각도 적잖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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