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눈 속에 … 김수환 추기경은 살아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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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눈은 고단했던 한국의 민주화 과정을 고스란히 목격했다. 평생 헐벗고 굶주린 이들을 따뜻하게 감싸 안기도 했다. 이 눈은 또 생명의 눈이다. 원래 주인을 떠나 앞 못 보는 타인에게 전해진 뒤 그에게 환한 세상을 안겨 준 것은 물론 새로운 ‘눈의 삶’을 살고 있으니 말이다.

 눈의 주인공은 꼭 3년 전인 2009년 2월 16일 세상을 떠난 김수환(1922년생) 추기경이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눈은 김 추기경의 각막이다. 김 추기경의 3주기에 맞춰 그동안 장롱 속에 꼭꼭 숨어 있던 김 추기경의 각막 사진(왼쪽 위 작은 사진)이 처음 공개된다. 사진작가 전대식(56)씨가 14일부터 4월 30일까지 경기도 양평의 갤러리 ‘와’에서 여는 전시를 통해서다.

1974년 개울가에 누워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공주교도소에 수감된 함세웅 신부를 면회하러 가던 도중 개울 옆에 드러누워 휴식을 취하는 김수환 추기경.

 전씨는 89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평화신문 사진기자로 일했다. 직접 촬영한 추기경의 사진에 주변 지인들로부터 제공받은 사진을 보태 모두 120여 점을 전시한다. 추기경의 인생 역정은 물론 인간적 면모를 엿볼 수 있는 미공개 사진이 대부분이다. 전시작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역시 김 추기경의 각막 사진이다. 추기경은 90년 장기기증 서약을 했다. 선종(善終)이 임박하자 각막을 제공받을 사람을 찾는 작업이 시작됐다. 마침내 추기경의 각막은 어릴 때 사고로 50년간 시력을 잃은 73세 여성, 역시 사고로 30년 넘게 앞을 보지 못했던 70세 남성에게 각각 이식됐다.

 사진은 수술 이틀째인 2009년 2월 18일 찍은 것이다. 당시 수술을 집도했던 서울성모병원 주천기 교수가 이번에 전씨에게 제공해 처음 공개된다. 주 교수는 장기를 기증한 이와 받은 이의 신상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따라 사진을 보관만 하고 있었다. 그러나 “평생 이웃 사랑을 실천한 추기경의 정신을 온전히 보여 주는 데 안구 사진만 한 게 있겠느냐”는 전씨의 설득에 마음이 움직였다고 한다.

1969년 박근혜와 만남 1969년 추기경에 서임된 뒤 7월 1일 청와대를 인사차 방문한 자리에서 당시 10대 후반의 소녀이던 박근혜 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과 이야기하는 김수환 추기경. 뒤편에 육영수 여사, 박정희 전 대통령의 모습이 보인다. 박근혜와 박 전 대통령 사이에 살짝 보이는 사람은 지학순 주교다.

 김 추기경은 장기간 불면증으로 고통받았다. 70년대 시대의 중압을 견디지 못해 생긴 병이다. 하루 두세 시간밖에 잠을 자지 못한 날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말년엔 거의 약을 달고 살 정도였다. 물론 뼈를 깎는 육체적 고통 속에서도 추기경은 겉으로는 아이와 같은 천진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타계 한 해 전인 2008년 6월 서울 혜화동 거처에서 찍은 사진은 그런 추기경의 처지를 실감나게 보여 준다. 링거를 꽂고 성경책을 들여다보고 있는 추기경 뒤편의 냉장고 위에 약병들이 수북이 놓여 있는 게 보인다. 2008년 성탄절에 찍은 사진은 죽음이 임박해 초췌한 모습이다. 보기 안쓰러울 정도다.

 전시작은 책으로도 묶인다. 『김수환 추기경-사진으로 보는 그의 신앙과 생애』(눈빛)다. 사진전에 출품되지 않은 사진을 더해 180점이 수록된다. 암 투병 중인 작가 최인호씨가 짧은 축사를 덧붙였다. “김수환 추기경님은 비록 우리의 곁을 떠나셨지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항상 우리 마음속에 살아계시니 영원히 지지 않는 꽃으로 부활하신 것입니다.”

 16일 서울 명동성당에서는 추모미사가 열린다. 김수환추기경연구소(소장 고준석 신부)는 생전 영상을 담은 DVD를 제작했다. 사진전은 재단법인 ‘바보의 나눔’(이사장 염수정 주교)이 주최한다. 문의 031-771-5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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