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적 체험활동과 입학사정관제

중앙일보

입력

대학이 학생을 선발하는 가장 첫 번째 목표는 대학에 들어와서 열심히 공부할 학생을 선발하는 데 있다. 그런데 최근 공부를 잘 할학생에 대한 판단 기준이 바뀌고 있다. 그 대상이 기존 입시에서는 수능시험 점수가 한두 점이라도 높은 학생, 대학별 고사(논술등)의 성적이 높은 학생이었다면, 입학사정관제에선 해당 고교의 교육과정을 충실히 이수한 학생, 학교생활에서 두각을 나타낸 학생이 해당된다. 입학사정관제는 고교 생활을 잘한 학생이 대학생활도 잘 할 것이라는 기대를 담고 있는 제도다.

 입학사정관제에서 말하는 학교생활 충실형 인재는 기존 교과수업에만 열심인 학생을 말하진 않는다. 대학이 원하는 지적 수준은 창의력과 자기주도 학습능력이다. 편협한 학교생활의 충실성이 아니라 미래사회를 주도할 창의 인재다. 이는 창의적 교육에 기반한 교과과정과 비교과 프로그램의 다양성을 전제로 한다. 수능시험에 맞춘 획일적 교육이 아니라 교사의 수업 재량권이 활발한 창의인성교육을 말한다. 교육 결과만이 아니라 교육 과정을 살피는 학교 현장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대입전형 단순화와 전형 통합, 사교육 부담 경감’이 아니라 ‘창의적 인재 선발, 다양성 존중, 대학의 학생선발 자율권 존중’이 되어야 한다. 입학사정관제가 학교생활 충실형을 강조하다 보면 자칫 학교 안의 개구리를 만들지 모른다. 대학은 우물 안 개구리가 아니라 세상과 소통하는 인재를 바란다. 이를 위해 대학이 창의성에 주목하는 이유다.

 제9차 교육과정 개정으로 고교의 정규 교육과정에 창의적 체험활동이 포함됐다. 고교는 창의적 체험활동 준비로 분주하다. 창의적 체험활동의 활성화는 대학이 입학전형에 얼마나 반영하느냐에 달렸다. 고교는 해당 활동이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입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 고민한다. 고교생들이 학교 안팎에서 경험하는 창의적 체험활동이 대학 입학과 무관하다면 고교의 진학지도에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다. 입학사정관제를 안착시키려면 고교의 창의적 체험활동 자료와 대학의 입학사정관전형 평가가 실질적으로 연계되는 것이 이상적이다.

 하지만 갈 길이 멀다. 지난해해 입학사정관전형을 실시한 결과 학교 중심의 창의적 체험활동이 대학의 기대와는 달랐다. 아쉽게도 많은 고교생들이 학교 수업 외의 모든 활동을 지나치게 창의적 체험활동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박물관 견학, 미술관·공연·영화 관람, 심지어 가족여행이나 여름휴가까지도 창의적 체험활동으로 생각한다. 입학 전형자료로서 대학이 바라는 창의적 체험활동은 학업기초소양을 단단히 다지고 대학 입학 후에 발전할 수 있는 체험과 활동을 뜻한다. 단순한 일회성 체험이나 관람이 아니라 학생스스로 능동적으로 체득하고 성장한 경험을 의미한다.

 체험도 좋지만 독서를 통한 간접 경험도 의미가 있다. 희망하는 학과와 관련된 서적을 읽고 진로에 대해 진지하게 사유한 흔적을 보여주면 된다. 창의적 체험활동은 뿌리를 튼튼하게 하는 자양분이 돼야지 한두 번의 단편적 경험으로 속단하는 사상누각이 돼서는 안 된다. 대학이 바라는 창의적 체험활동은 교과서에서 배운 이론을 현실에 적용시켜 보는 실험정신과 탐구정신, 심화된 경험과 지적 열정이어야 한다. 그 중심에 바로 중·고교가 있다. 학교가 다양한 경험과 창의적 체험의 산실, 미래사회가 원하는 ‘창의성의 보고(寶庫)’가 돼야 한다.

<임진택 경희대 책임입학사정관(한국대학입학사정관협의회 고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