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적방송'이라더니 자기꼼수에 걸린 나꼼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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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나는 꼼수다(나꼼수)’의 공동 진행자 김어준(44·사진)씨가 10일 올린 방송에서 “고의적인 인과관계 왜곡으로 (비키니) 논란이 생겼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이날 방송에서 “성욕감퇴제 발언은 지난달 21일 방송됐지만 녹음한 것은 비키니 사진이 올라온 날(20일)보다 앞선 18일”이라며 “(비키니 사진을 보고 성희롱을 했다는 주장은) 인과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파편화된 정보들이 잘못 배열돼 이상한 인과관계가 얽히면서 ‘주키니(주진우+비키니)’ ‘김감퇴(김용민+성욕감퇴)’라는 가공의 인물이 탄생했다”고 주장했다.

 나꼼수 측은 지난 4일 토크 콘서트에서 논란에 대해 언급하긴 했지만 나꼼수 방송에서 입장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씨는 그동안 침묵을 지킨 이유에 대해 “논란의 본질이 뭔지, 누가 어떤 속셈인지, 바닥이 다 드러날 때까지 기다린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비키니 사진의 여성과 같은) 섹시한 동지도 있을 수 있다”며 “앞으로도 유치한 성적 농담으로 시시덕거리면서 계속 방송을 하겠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그동안 확증 없이 ‘파편화된 정보들’을 짜맞춰 음모론을 제기해온 나꼼수가 이번 논란에 대해 ‘인과관계 탓’을 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일례로 나꼼수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 대한 디도스 공격이 선관위 내부 소행이라는 주장을 펴 왔다. 이에 대해 진보 논객 진중권(49)씨는 “디도스 공격이 이뤄지던 시점에 투표소 검색에 성공한 유권자를 찾았다. (선관위 내부 소행을 주장하려면) 이런 기초적인 사실부터 확인했어야 했다”고 맞받았다.

 팩트(fact)에 대한 검증 없이 일방적 추론을 편 뒤 진실인 것처럼 믿게 하는 나꼼수의 방식은 김어준씨의 저서 『닥치고 정치』에서도 묻어난다. 책은 ‘도곡동’ ‘다스’ ‘옵셔널벤처스’ ‘BBK’ 등 파편화된 정보를 김씨 나름의 연결고리로 엮어 ‘주가조작’ ‘차명재산’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김씨 스스로도 ‘추정이 되는 바야’ ‘물론 완전히 허무맹랑한 소설에 불과하지’라는 표현을 쓰며 자신이 추론에 의지하고 있음을 시인한다. 하지만 곧 ‘내 말을 믿으면 안 돼. 가카는 절대 그럴 분이 아니시니까’라며 대중의 욕구를 자극하는 방식으로 여운을 남긴다. 공소장과 판결문을 구해 읽으며 “드러난 팩트만으로는 주가조작을 입증할 수 없다”는 진중권씨의 접근법과 대비되는 부분이다.

 문제는 나꼼수가 이번과 같은 논란에 봉착했을 때 ‘우리는 어차피 해적방송’이라는 말로 책임을 지려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나꼼수는 지난해 ‘민주언론상’을 수상했지만 언론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외대 김춘식(언론정보학) 교수는 “나꼼수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가 높아지면 나꼼수가 내놓는 정보의 질과 공공성도 검증의 대상이 된다” 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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