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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VP는 감독이 만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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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영훈
경제부문 차장

수퍼보울, 미국 프로풋볼리그(NFL)의 챔피언 결정전이다. 수퍼보울에 대한 미국인의 열광은 상상을 넘어선다. 경기와 대통령 취임식이 겹치면 취임식을 조정해야 한다고 여길 정도다.

 올해 수퍼보울의 MVP는 일라이 매닝이다. 우승팀 뉴욕 자이언츠의 쿼터백이다. 일라이는 늘 2등이었다. 형 때문이다. 그의 형 페이튼 매닝은 NFL에서 첫손에 꼽히는 쿼터백이다. 일라이는 2008년에도 수퍼보울 MVP였다. 그러나 모두 ‘페이튼의 동생’이 상을 받았다고 여겼다. 형제의 소속팀이 맞붙는 날, 동생이 꼼수를 써 형을 창고에 가둔다는 광고가 있었을 정도다. 이번 시즌 직전에는 “나도 형 정도 수준은 된다”는 그의 말에 “웃기지 말라”는 비아냥이 쏟아졌다. 그러나 그는 두 번의 우승으로 형(1회)을 넘어섰다. 우승 기록으로만 보면 이제 페이튼이 ‘일라이 형’으로 불릴 법도 하다. 만년 2등의 도전과 성취, 이게 팬들이 다시 NFL 경기장을 찾게 하는 동인이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2등이 1등으로 올라설 때, 꼴찌가 무섭게 치고 올라갈 때 활력이 돈다. 우선 당사자가 잘해야 한다. 지금은 일라이가 ‘수퍼보울의 사나이’로 불리지만 프로 초년병 시절 그는 큰 경기에 약한 ‘새가슴’으로 불렸다. 그리고 혼자 이뤄낼 순 없다. 일라이의 곁에는 그의 최대치를 끌어낸 감독이 있었다. 톰 커플린(66) 감독은 자신을 바꿔 일라이와 팀을 살렸다. 독하고 엄하기로 유명했던 그는 농담을 하고 웃는 감독으로 변했다. 팀워크를 위해서였다. 예순을 넘어 성격을 바꾼다는 것, 얼마나 어려운지 누구나 안다.

 정치권에서 재벌 때리기가 한창이다. 여야도 없고, 진보와 보수도 없이 한목소리다. 1등에게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규칙이 잘못됐다면 바로 잡아야 한다. 그런데 그걸로 ‘퉁치면’ 나중에 아무것도 남는 게 없다. 1등 탓을 한다고 2등과 3등이, 꼴찌가 치고 올라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작은 기업이, 새 기업이 달려나갈 수 있게 하는 게 먼저다.

 할 일은 너무 많다. 신성장 분야인 녹색산업의 초기 투자비는 정보기술(IT) 산업의 10배쯤 된다. 게다가 투자를 한 후 수익을 낼 때까지 걸리는 시간도 길다. 그런데 아직 우리는 이런 환경에 맞춰 자금을 융통할 금융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보호막을 쳤으니 이제부터 마음껏 해보라고 한들 될 리가 없는 이유다.

 갈 길도 멀다. 무엇보다 참고서가 없다. 한국이 이제 세계 경제의 맨 앞줄에 서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머리를 더 싸매야 한다. 그걸 하라고 있는 게 정치다. 부문별 코치는 관료도 할 수 있다. 그러나 헤드 코치, 감독은 정치적 리더십이 있어야 가능하다. 역사는 이런 감독을 잊지 않는다. 미국인이 그토록 열광하는 수퍼보울 우승 트로피의 명칭은 ‘빈스 롬바르디’다. 선수 이름을 딴 게 아니다. 롬바르디는 1·2회 수퍼보울 우승팀을 이끈 감독 이름이다.